<중앙시평>노동법 개정과 해외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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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동법 개정문제는 우리의 국내문제에 속한다.그런데도 해외의 반응은 대단하다.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노동계와 경영자 대표들을 불러 그 들의 설명을듣는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서울에까지 와서 파업하는 한국노동계와 연대감을 시위하는 장면을 보여줬고,외국기업들과 정부들도 과연 한국이 노동시장을 개혁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초미의 관심을 갖고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 노동법 개정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동안 국내에서 나타난 우리 국민의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난 23일 OECD 사무총장이 밝힌 주요 관심 사항은 한국정부가 이미 OECD에 약속한바 있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완전히 보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OECD의 입장에서는 정리해고제 같은 노동시장에 탄력성을 주기 위 한 제도에 대해선 비판하거나 반대할 이유가 없고,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복수노조문제에 대해서도 개정노동법은 한국정부의 약속이 충분히 이행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옛 노동법에 비해 후퇴했다는 뜻은 아니다. 해외언론들도 결사의 자유 문제와 노동법 개정의 절차상 문제는지적하고 있지만 정리해고제등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오히려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국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제고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 고 있다. 국내의 관심은 이와는 대조적이다.정치권은 절차문제에만 집중하고 있고,노조들은 조직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는 것 같다.특히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등을 문제삼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복수노조를인정하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 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밝혀진바와같이 무엇보다도 정리해고제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솔직히 말해 한국 국민 가운데 복수노조 문제를.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차원에서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그러나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 자신들의 고용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중산층을 포함,국민의 다수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 고통은 한 인간의 긍지와 자존심,그리고 삶의 의미까지 위협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평생직장이 보장될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사회 도 안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안정만을 추구하면 변화에의 적응이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경직된 노동시장은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는것을 어렵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실업(失業)을 초래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노동법 개정문제를 예로 들면서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한다.그러나 노동시장이 비교적 경직돼 있는 유럽연합은 91년 이후 거의 5백만에 달하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노동시장이 가장 유연한 미국은 같은 기간에 8백만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변화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법 개정문제는 우리의 국내문제지만 우리는 해외여론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특히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극복할 필요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동의없이 변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 이코노미스트의 충고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 매우 적절하다. 앞으로 노동법문제는 국회의 틀안에서 여야가 대화로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그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다만 여야의 대화는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데 대한 국민적 합의위에서 이뤄질 때 생산적 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한국이 변화의 도전에 직면해 성공할 것인가,실패할 것인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우리 모두작은 이익을 버리고 보다 큰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金 瓊 元 <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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