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미나 슘 감독 "더블 해피니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세계화 시대라지만 지역마다,세대에 따라 다른 삶의 가치와 행복의 잣대들은 서로 맞서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아시아의 터전을 떠나 미주로 옮겨간 사람들의 가정은 이러한 갈등이 극대화되는 현장이 되곤 한다.이민온 가족들의 애정과 미묘한 갈등을 다룬 작품들 가운데 중국 출신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이 단연 빛난다.
이 작품들은 미주로 이민온 1세대와 1.5,2세대들의 중국어와 영어가 뒤섞이는 대화 속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화교들의 정체성과 세대간 문제를 한 가족내에서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최근 비디오로 나온.더블 해피니스'(喜喜.94년작.브에나비스타)는 캐나다의 신진 여류감독 미나 슘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홍콩에서 캐나다로 이민온 중국인 가족내에서 자란 1.5세대인 22세의 발랄하고 꿈 많은 여자가 애정과 가족관계에 관한 중국 전통의 가치관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소박한 이야기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가정을 떠나 홀로 삶을 꾸리기로 하는,슬프지만 간결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세대간 갈등을 드러내주는 아기자기하고 상징성이 풍부한 장면과 대사들로 넘친다.캐나다의 한국계 2세인 연극배우 샌드라 오가 주인공 으로 출연하는 이 작품은 서양 영화에서 보기 힘든 미묘한 감정표현과 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중국 전통의 가족질서와 이민 세대의 갈등을 주로 다뤄 세계적명성을 얻은 리안(李安)감독의 작품들은 이 방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92년 아태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한 리안 감독의.쿵후선생'(원제:推手.Pushing Hands.영성)은 같은 주제가 숨어 있는 수작이다.
미국의 아들집에서 벽안의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겪는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처연하게 집을 떠나는 쿵후 대가의 말로가 역동적인 장면으로 엮어진다.
이 작품에서 한발 더 나아가 93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에 빛나는 같은 감독의.결혼피로연(영성)'은 세대간,동.서양간의 가치관이 보다 힘있게 충돌한다.동성애를 하는 중국 유학생이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중국여자와 위장결혼을 하면서 벌 어지는 해프닝을 적나라하고 섬세한 터치로 보여준다.
.결혼피로연'과 동시에 이같은 주제를 보다 세계적인 관심사로만들어 놓은 작품으로 중국계 웨인 왕 감독의.조이 럭 클럽(93년.브에나비스타)'을 꼽을 수 있다.
마작 게임에 모인 4명의 중국계 어머니들이 남성 지배사회인 중국 본토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며 수다를 떠는 것과 미국에서 자라난 그들의 딸들이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세계를 대비하는 가운데 보는 이로 하여금 가정과 세대간의 다양한 문 제들을 제시해준다. 이러한 이야기가 비단 중국계 뿐만아니라 수백만명의 교민이 나가 있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데 비슷한 작품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채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