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53. IOC 총회 유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아벨란제 FIFA 회장과 1999년 IOC총회와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놓고 팽팽한 대결을 펼쳤다.

1995년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제104차 IOC 총회가 열렸다. 안건 중에는 99년 총회 개최지를 결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IOC 총회는 100명이 넘는 IOC 위원이 모두 모이는 큰 행사다. 더구나 99년 총회는 2006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총회인데다 20세기 마지막 총회라는 의미가 있었다. IOC 위원뿐 아니라 각 국제연맹 회장, 올림픽 개최 희망 도시의 유치단, 각국 취재진 등 2300여 명이 몰려들어 총회가 열리는 도시는 다시 한 번 세계 스포츠의 중심이 된다.

한국은 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세계 스포츠계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이벤트가 없었다. 올림픽 개최는 당분간 가능성이 없고 총회는 상당한 의의가 있겠다고 생각해 유치 신청을 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경합이었다. 2004년 올림픽 유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브라질은 20세기 마지막 총회를 치른 뒤 그 탄력을 받아 올림픽을 향해 달릴 생각이었다. 브라질에는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파디야 위원 등 2명의 IOC 위원이 있었다. 나 혼자 이들을 상대해야 했다. 더구나 라틴계 위원 20명은 브라질의 고정표였다. 총회의 중요성을 느낀 브라질 대통령이 직접 부다페스트로 날아와 지원 사격을 했다. 여러모로 불리했다.

나는 총회 시작 전에 독일·뉴질랜드·이탈리아·네덜란드 위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리우는 세계환경회의를 개최한 아름다운 도시로 99년 총회를 유치하기 위해 비디오까지 준비했다. 나는 “사전 지침이 없었다. 리우만 비디오를 틀어준다면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해 리우의 비디오 상영을 중지시켰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이번 총회는 리우에 양보하고, 며칠 후(6월 30일)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할 때 아벨란제의 도움을 받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총회 개최 직전 스웨덴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에서 사마란치와 아벨란제 간에 이런 의견을 교환한 것 같다.

나는 “이번에 양보한다면 아벨란제가 어떤 협조를 할 수 있을까” 반문했다. 월드컵 유치를 놓고 일본과 격돌해야 하는데 일본과 가까운 아벨란제가 한국에 협력한다는 어떠한 보장도 없었다. 나는 “보장이 안 되는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결심이 굳은 것을 안 사마란치가 “최선을 다해보라”고 했다.

하루는 이탈리아의 카마로 위원(로마시장)이 찾아왔다. ‘99년 총회는 리우, 2001년 총회는 서울’이라는 협상안이었다. “브라질은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뛰고 있는데 브라질의 체면도 생각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99년 서울, 2001년 리우’라는 역제안을 했다.

결과는 53대 31로 22표 차의 대승이었다. 아벨란제는 역시 거인이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축하하는 연설을 했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브라질 몫까지 더해 훌륭한 총회를 치르겠다”고 답했다.

김운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