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의 주소혁명 ‘찾기 쉬워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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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 3번 출구에서 150m 직진 후 첫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 오른쪽에서 두 번째 하얀색 건물입니다.” 서울에서 길을 물어봤을 때 흔히 나옴직한 대답이다.
이런 정도면 그나마 알아들을 만하다. 누군가 “솔개길을 주욱 따라가다가 재실길이 나오면… ”라고 일러주면 도통 무슨 소린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이게 우리 동네방네 현주소다. 대부분의 나라가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일제가 조세징수를 위해 만든 토지지번을 지금껏 사용해 왔다. 도시개발 등으로 지번이 변경되고 위치 찾기가 어려워져 주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에도 그냥 방관해 왔던 것.

1997년 정부가 도로명 주소를 추진했지만 새 도로명으로 길을 찾는 일도 쉽지는 않다. 강남지역에만 954개의 도로명이 생겼지만 ‘양지’ ‘솔개길’ ‘산등성이’ ‘재실길’등 지역특성과 역사성을 위주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이름이 많아 기억하기도 어렵고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강남구(구청장 맹정주)가 새주소 시행에 나섰다. 새주소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20개의 간선도로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압구정로·테헤란로 등 동서간 간선도로가 8개, 강남대로·선릉로·삼성로 등 남북 간선도로가 12개다.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추진한 사업이기에 어려움도 많았다.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우리구 도로망 체계에서 위치파악이 쉽고 인지도가 높은 큰(간선) 도로에 방위와 번호를 붙여 길 이름을 정했다”고 맹 구청장은 새주소 체계를 설명했다. 예를 들면 ‘강남구 논현동 50-10번지’는 ‘강남구 학동로 북1길 5’로 바뀐다. 즉, 학동로 북쪽 방향 첫 번째 골목길에서 왼쪽 다섯번째 건물이라는 뜻이다.
이번 새주소 시행은 도로명 주소가 의무화되는 2012년 전에 새주소를 정착시키 위한 것이다. 강남구는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설치도 이미 끝냈으며 인터넷 검색으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완료했다. 새주소가 시행되면 원하는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각종 응급상황에도 유용하다. 길을 찾는데 들어가는 사회적간접비용이 절감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맹 구청장은 “새주소는 내비게이션과 지도가 없어도 목적지를 찾을 수 있는 체계가 기본”이라며 “이달 중 내비게이션 회사와 간담회를 개최,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해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서울대학교 박영목 교수가 디자인한 도로명판은 도시미관과 친환경을 고려해 간판의 크
기를 축소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었다.
도로명판이 정비되고 있는데 비해 정부 관할의 도로표지판은 아직 그대로다.
“안세병원 사거리의 경우, 안세병원이 을지병원에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강남구청 지적과 김영길과장은 원칙 없이 특정 지점이나 시설물을 표시하는 현재의 도로표지판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맹 구청장 역시“국토해양부도 기존의 특정건물이나 지명안내 방식에서 도로명 중심으로 개편을 추진 중”이라며 “서울시와 국토해양부와 협의하여 2009년부터 시범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리미엄 이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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