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바른 선택과 경제 되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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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제 우리는 한 세기,더 나아가 한 천년대(millenium)가 바뀌는 길목에 서 있다.앞으로 몇년이면 새로운 세기,새로운 천년대가 시작된다.이 세기말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각오로 새로운 세 기와 천년대를 준비해야 할 것인가.
역사는 우리에게 지금 좀처럼 맞기 어려운 기회와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된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느냐,선진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마느냐가 그 첫째다.남북분단(分斷) 반세기가 넘은 우 리민족이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 기회를 또다른 전쟁의 참화 없이 민족통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역량을 준비해 두느냐,그렇지 못해 그 기회를 그냥 흘려버리고 마느냐가 그 둘째다.문민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구석구석 권위주의시대의 구태로 찌들어 있는 우리 정치를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민주정치로 한단계 발전시키느냐가 그 셋째다.그리고 무엇 보다 어디 하나 성한데 없어보이는 심각한 우리사회의 부패를 정화해 과연 자정(自淨)능력을 회복할 수 있겠느냐가 그 넷째다.
이러한 도전들을 우리가 차근차근 슬기롭게 헤쳐나간다면 새로운세기,새로운 천년대는 우리가 역사의 주체가 되는 세기요 천년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1세기를 4년 앞둔 올해는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두세기,두 천년대의 고리역할을 할 새 대통령을 뽑는 해다.바른 선택으로 우리의 민주정치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해,정부.기업.국민이 경제회생(回生)에 전력을 다하는 해,평화통 일을 바라보며북한의 동요에 실질적으로 대비하는 해가 돼야 한다.
우리는 50년 가까운 헌정사,특히 최근 10년 직선의 경험으로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대통령 혼자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권한과 책임이 집중된 우리나라같은.제왕적'대통령제 아래서는 도덕성,국정에대한 이해와 판단력,건전한 상식,지적 능력같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절감했다.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도 하지만 빌릴만한머리를 감별하는 눈과 남의 머리를 끌어내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역시 지도자의 몫이다.
2003년까지 재임하게 될 다음 대통령은 새 세기,새 천년대를 준비하고 열 대통령이다.그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리고,어쩌면 민족통일의 길을 열고,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부정부패를 일소해 나가야 할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그 럴 수 있는자질과 능력을 지닌 지도자를 뽑는.바른 선택'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야의 이른바 대권후보군에서 이런 능력과자질을 지닌 지도자감이 있는가.현재 거론되고 있지 않은 사람중에는 그런 재목이 없는가.이 문제는 올 한해 우리국민이 풀어야할 숙제다.
그리고 올해는 무엇보다 경제되살리기에 국민적 힘을 모으는 해가 돼야 한다.그런대로 잘 나가는줄 알았던 우리경제는 지난해 경상수지적자가 2백40억달러에 이르고,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고,성장률은 6%대로 급락하는 허약 체질을 드러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경제후퇴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고(高)비용 저(低)효율'이란 우리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경제는 잠재적 성장능력을 넘는 고성장의 지속으로 임금.금리.지가(地價)가 급격히 상승하고,도로.항만등 사회간접자본투자위축으로 물류비부담이 폭증했다.그렇다고 경쟁력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나 기술혁신도 따르지 못해 효율이 떨 어진데다 수출간판품목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지 못했다.
이런 취약한 구조로는 경기가 좀 나아진다 해도 우리경제가 선진국을 향한 추진력을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게 돼있다.이러한 구조를 개선하려면 불가불 모든 경제주체가 고통을 감내하는 안정적경제운용이 필요하다.하지만 선거를 앞둔 시기에 고통의 감내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에 캄플주사를 하는식의 인기정책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경제의 고비용 저효율구조는 오히려 심화되고 만다.국내경기가 저점(低點)에까지 갈 올 한해는 안정적 경제운용으로 취약한 산업구조의 조정.경영의 합리화.과소비의절제 등 우리경제의 거품을 걷어내고 국제경쟁력을 기르는 해로 삼아야 한다.
***北체제 동요 적극 대비해야 끝으로 올해는 남북문제.통일문제에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해가 돼야 한다.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한 북한측의 공식사과표명으로 남북관계는 숨통이 트일 전기를 맞았다.우리로서도 북한정권을 상대로 관계개선노력을 적극화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도 없다.
그러나 그와 병행해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피폐에서 비롯된 북한의 체제동요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북한의 체제가 쉽사리 붕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체제이탈현상이 가속화할것은 거의 틀림없다.우리가 북한의 체제이탈이나 붕괴를 조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현실인 이상 이를 피하려 해서는 안된다.
지금같이 탈북(脫北)난민을 납득할만한 기준 없이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건 불합리하다.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조에도 위배된다.희망하는 모든 이스라엘인이나 독일인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과 독일의 경우에 비추어도.선별 수용'이란 이름의 탈북난민 외면정책은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또 현실문제로 다량 탈북난민사태가 생긴다면 선별이고 뭐고가 가능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예산도 확보하고,수용시설도 대폭 확충하며,적응 프로그램도 갖추는 등 북의 체제동요에 구체적으로 대비에 나서는 첫해가 돼야 한다.
추락하는 경제 되살리기,새로운 세기와 천년대를 열 능력있고 비전을 지닌 지도자 선출,남북통일을 향한 구체적 준비의 착수-.올해 우리가 당면한 과제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의 땀과 희생,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없 다.그렇지만우리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힘을 합쳐 다시 열심히 뛴다면.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우리는 어떤 일도 결국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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