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조는 임금 동결, 사측은 일자리 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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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통을 나누며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노사 화합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 자제를 악속하고, 사측은 일자리 보장으로 화답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노조는 10일 고용 유지를 전제로 한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뉴코아·알리안츠생명·이랜드·삼환운수 등 장기 분규 사업장들도 잇따라 동참을 선언했다. 노동부 조사에 의하면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9월 이후 노사 화합 선언을 한 사업장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세 배를 웃도는 651곳에 달한다.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기 위축에 대응하는 방법은 노사가 힘을 합쳐 생산성을 높이는 길뿐이다. 상생의 밑그림이 되는 노사 화합은 지혜로운 선택이다. 대량 실직은 소비 급감→투자 감소→구조조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특히 일자리 시장이 탄력적이지 못한 우리 입장에서 대량 실직은 곧 사회 빈곤층 급증을 뜻한다. 이 때문에 임금을 줄이더라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잠정적인 잡 셰어링(Job sharing)도 채택할 만하다. 노와 사는 이 고통의 시기를 항구적인 노사 평화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노사에 문제가 없는 직장이 그렇지 않은 직장에 비해 이직률이 무려 10% 이상 낮고, 생산성도 높다는 노동연구원 조사 결과도 있다.

생산 효율 제고는 곧 수익 증대로 연결된다. 고질적인 노사분규 사업장이었던 현대중공업은 95년 노사 화합 선언 이후 13년간 무파업을 지키며 매출이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장기 무파업의 배경에는 노사의 합리적인 과실 배분이 자리하고 있다.

노사의 화합은 노사 양측의 자기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조가 임금 동결에 찬성하면 사측은 고용 보장과 과실 배분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부도 노사 화합 선언 사업장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금융 지원,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방법을 마련해 노사문화 선진화의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일에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대량 실직에 따른 빈곤층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덜 들고 효율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