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학습 효과 … 대기업 도산 신청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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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고영한(사진) 수석부장판사는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고려할 때 내년 2월께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전국 법원에 접수되는 도산 관련 사건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인 9월과 10월 23건의 법인회생 신청 사건이 들어와 고 부장판사를 포함한 판사 18명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고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에 두 명의 판사를 증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도산 관련 신청이 급증했다. 하지만 당시는 대기업이 상당수였지만 이번에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자산 가치 1조원 이상의 기업은 한 곳도 없다. 3000억원 정도가 다섯 곳이다. 당시의 ‘학습 효과’를 통해 대기업들이 유동성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법인회생을 신청한 업체들은.

“제조업(전자부품·정보기술)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건설업이다. 건설사 부도 위기가 241곳이라는 보도도 있었는데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경제난과 상관없는 횡령·배임 등의 이유로 회생을 신청한 업체들은 없나.

“그런 경우는 없다. 대부분 원자재 값 상승, 중국과의 경쟁, 유류 값 인상 등을 이유로 댄다. 회생제도를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검사한다. 가죽 점퍼 입고 후줄근하게 하고 법원에 와서 회생을 신청한 뒤 나갈 때는 에쿠스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엄격하게 심사해 올해 개인파산을 20%가량 줄였다. 면책심사를 강화한 것이다.”

-사건이 너무 많아 부실하게 심사할 가능성은 없나.

“판사당 사건 수는 일률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법인회생에 12명이 70건을 담당하고 있으니 1인당 5~7건으로 보면 된다. 5명의 상임위원과 2명의 비상임위원으로 이뤄진 관리위원회도 있다. 채권자 보호보다 채무 회사 살리기에 중점을 둘 때가 많다.”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려는 기업들에 조언을 한다면.

“법원에 너무 늦게 신청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영업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거래처가 끊긴 뒤 들어오면 기업 가치 산정이 어렵다. 태산LCD가 모범적인 경우였다. 법원을 겁낼 필요가 없다.”

박재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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