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가모, 창립 80주년 행사 상하이서 열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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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22면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70년대 말부터 베이징의 공원에선 패션쇼가 자주 열렸다.

1980년대 초까지 중국인의 복장은 ‘2종(種) 3색(色)’으로 통했다. 군복·인민복이란 두 가지 종류에 회색·남색·흑색의 세 가지 색깔을 벗어나지 못했다. “패션은 자본주의의 정신오염 작태”라는 도그마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87년 11월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총서기가 공산당 회의석상에 암청색 양복을 입고 나왔을 때 전 세계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4.의복·패션- 인민복이 명품 브랜드로

중국 최초의 모델회사 신쓰루(新絲路)가 탄생한 게 84년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패션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단어는 ‘변신’이다. 수퍼모델 두쥐안(杜鵑·25)은 변신의 속도감을 이렇게 설명한다. “(해외 컬렉션 출장 등으로)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오면 ‘여기가 베이징 맞나’ 싶을 만큼 달라져 있다. 최신식 패션몰과 새로 입점한 해외 패션 브랜드 중엔 내가 못 본 게 있을 정도다.”

중국 패션을 변신시키는 최대 동력은 해외 명품과 패션잡지들이다. 3월 이탈리아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브랜드 창립 80주년 기념 행사를 이탈리아 피렌체가 아니라 상하이에서 열었다. 펜디의 경우 지난해 10월 만리장성에서 모델 88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패션쇼를 열었다. 크리스찬 디올은 조만간 베이징에서 고급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 전시회를 연다. 베이징·상하이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행사들이 열린다.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인 중국을 잡기 위한 것이다.

베이징에서 패션 스타일링을 강의하는 한국인 류현식(33) 교수는 “중국에 코스모폴리탄·엘르·보그 같은 패션잡지가 10여 년 전 진출했는데 최근 2~3년 새 발행부수가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패션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넘어 무엇이 정말 멋진 패션인지 소비자 스스로 이해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중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들도 소비자의 안목에 맞춰 가고 있다. 알렉스 왕(본명 王培泥·34)은 유명 영화배우 자오웨이(趙薇·32) 등 연예계 스타와 부유층 여성을 상대로 고급 맞춤복을 디자인하며 명성을 쌓고 있다. ‘비비엔 탐’ ‘상하이 탕’ 같은 브랜드는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는다. 상하이 탕은 카르티에·피아제·몽블랑 같은 최고급 명품이 속해 있는 리슈몽 그룹의 일원이다.

하지만 중국산 명품 브랜드의 파워는 아직 약하다. 바이성(百盛)백화점그룹의 최고운영경영자(COO) 류징돤(劉敬鍛)의 말이다. “‘중국인 패션 디자이너 가운데 이 사람이 최고’라고 말할 사람이 아직 없다. 최상류층은 과시욕 때문에 해외 명품만 산다. 국산 브랜드가 좀 있지만 명품의 트렌드를 배워서 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중국 패션의 변화를 이끄는 소비층은 어떤 사람들일까.

‘쎄씨 차이나’의 왕쉬메이(王緖梅) 편집장은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며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패션을 동경하고 모방하면서 패션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 간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가 중국에 몰리고 외국계 기업이 넘치다 보니 그들과 접촉하는 계층이 패션 리더로 부상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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