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號어디로갈까>上.黨초월 國政 '힘의 공백' 매울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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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1세기를 수년 앞두고 미국의 진로는,그리고 그에따른 세계정세의 향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냉전이후 세계에서,그리고 통일을 앞두고 변수가 많은 남북한간의 갈등구조에서 우리에게 이보다 큰 관심사는 찾기 힘들다.빌 클린턴 미국대통령 의 재선이후외교안보팀에 이은 경제팀의 인선으로 클린턴 집권 2기 행정부 진용도 이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새로 출범할 클린턴 정부의 성격과 대내외 정책방향등을 세차례에 걸쳐 심층진단한다.
[편집자註] 클린턴 집권 2기 행정부의 앞날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가시밭길을 예고하는 사람들과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이는분석가들이 팽팽히 맞선다.그만큼 전망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선 클린턴에게 우울한 시나리오는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게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모든 여론조사가 클린턴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실제는 겨우 8%포인트 차의 승리였던 만큼 클린턴이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따라서 홀가분하게 소신껏 일해나갈 수 없으리란 분석이다.
더구나 클린턴으로서는 의회의 협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클린턴은 선거 막바지에 자신의 선거보다 민주당의 의회선거지원에 더 힘을 쏟았다.그러나 끝내 의회탈환에는 실패했고 오히려 공화당은 상원에서 민주당과의 의석차를 더 늘렸다.국민의 견제심리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라지만 클린턴 입장에서는 .조건부'로 국정운영을 위임받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꼬리표가 달린 승리였던 것이다.
공화당이 행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고삐를 바짝 움켜쥐려 할 것은 당연하다.
공화당 주도 상.하원의 결속도 예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것으로 보인다.새로이 당을 이끄는 트렌트 로트 상원 원내총무와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호흡이 썩 잘맞는 편이기 때문이다.
내년초 의회의 새 회기가 시작되면 클린턴과 관련된 각종 스캔들이 집중 추궁될 것이다.특히 민주당의 외국인 선거자금 모금문제는 집권 2기 초반부터 클린턴을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경제사정이 좋기 때문에 클린턴이 계속 그 덕을 볼 것이란 주장이다.
앞으로 몇년새 경제가 나빠질 이유가 하나도 없어 큰 실수만 않으면 순항은 보장된다는 얘기다.상.하 양원의 공화당 지도부 사이에 협조가 잘 이뤄진다 하더라도 4년뒤 대선을 염두에 둔 공화당 인사들이.설칠'경우 당내 분란도 완전히 배 제하기는 어렵다. 공화당의 결속력을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에서 미국민들은 생각보다 실용적이다.따라서클린턴이 초당파적이고 거국적인 정책을 추진할 경우 탄탄한 지지를 누릴 수 있으리란 분석도 있다.각종 스캔들과 공화당의 흠집내기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같이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2년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참패했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상황을 반전시킨 클린턴의역량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클린턴으로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대통령으로 역사에 훌륭한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 욕심을 이루기 위해 당파를 초월하고 싶은 유혹에도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과 가까이 지내는 건 좋아도 민주당과 멀어지는 건 두려울지 모른다.
각종 스캔들을 파헤칠 의회청문회를 앞두고 스스로 무장해제하는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집권 2기 클린턴의 족적은 의회 민주당 지도자들의 입김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클린턴은 자신의 집권을 결정적으로 도와준 앨 고어 부통령에 대한.빚'도 갚아야 한다.자신의 집권 2기를 고어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발판으로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감이다.따라서 민주당 지도부에 이어 고어의 의견도 집권 2기 를 좌우할 큰 변수로 전망된다.
고어는 이미 집권 2기의 각료임명에도 깊이 간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넓은 의미에서 클린턴 집권 2기의 권력누수(레임덕)는 벌써 시작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클린턴 2기 정부가 공화당이라는 큰 외풍(外風)을 잘 타고 넘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공화당쪽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클린턴 호'의 진로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클린턴은 철학보다 뛰어난 현실 적응력으로 버텨온 인물이다.클린턴의 능력이자 결점은 여러 사람들을동시에 만족시키려 드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 들이 많다.따라서 그의 집권 2기는 뚜렷한 비전 제시없이 여러 세력들의 틈바구니에서 상황변화에 따른 임기응변에나 급급할 것이란 예견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어가는 실정이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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