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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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청소년기의 남자에게 있어서는.강한 아버지 상(像)'이 필요하다.자기와 동일시(同一視)하는.존경할만한 아버지'의 존재가 요구되는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同性愛者)에게 공통되는 특성 가운데 하나가 이같은 아버지상을 지니지 못한 점이라 한다..동성애'란 책을 펴낸 심리학자 웨스트의 주장이다.
강한 남성,높은 지식을 지닌 남성,능력있는 남성에게 끌리는 남성 동성애자의 심리는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동성애자중 남성 역을 담당하는 여성에게도 이 학설은 합당한지 모른다.소년기에 강한 아버지상을 보고 자라지 못한 굴절된 심리가 스스로 강한 남자이고자 만드는 것은 아닐까.
누에고치처럼 하얀 시트 속에 숨어 우는 아내를 자신있게 달래는 갈색머리 여인의 태도가 그것을 짐작케 했다.
한편 여성 역할을 하는 여성 동성애자에겐 강한 아버지로부터 흠씬 사랑받고자 하는 심리와 더불어 최대한.여자'이고자 하는 소망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지 모르겠다.무기력한 아버지를 헌 신짝 다루듯 해온 어머니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맥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들의 행태를 보며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문 대가의 딸로 반뜻하게 자란 아내의 친정 어머니는 사업적인 수완도 지닌 당찬 여성이다.그녀의 지참금과 그녀의 힘으로 대기업의 터를 잡게 된 친정 아버지는 덩달아 무능한 이미지로 딸의 눈에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강한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의 이미지에 주려 소녀기를보낸 것일까.측은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여자끼리의 애무 현장을 목격한 충격이 참담한 패배감으로 바뀌어 맥을 괴롭혔다.
차라리 상대가 남자였더라면 이렇게 비참하지 않을 것같았다.남자가 남자임을 거부당하는 모멸감이 어떤 것인지 뼈아프게 느꼈다. 육신의 비밀화원을 활짝 열어 갈색머리의 입맞춤에 도취되어 있던 아내의 표정이 맥을 여지없이 비웃는 결과가 된 셈이다.
아내 또한 저런 몰골로 갈색머리를 애무했을 테지…하는 상상으로 맥은 더욱 상처받았다.
섬세한 관능세계의 기미를 잘 알고 있어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더 여자를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다.아내는 갈색머리가 자신의 육신에서 뽑아낸 은빛 실의 눈부심을 보았을 것이고,남편과의 밤살이와 비교도 했을 것이다.
아리영과의 일은 둬두고라도 이제 남은 일은 이혼뿐이라 지그시어금니를 악물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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