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화재로 숨진 중국동포 4명 장례 치러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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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12면

서울 대림동의 한 상가건물 2층에 자리한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사무실에 대원들이 모였다.

“봉사 중독증인가 봐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봉사하는 기쁨이 두 배입니다.”

봉사에 중독된 택시기사들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지난달 27일 오전 9시 서울 삼성동 서울의료원에서 치러진 고시원 화재 참사 중국동포 장례식에 택시기사 56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숨진 중국동포 4명을 운구하고 화장터까지 동행했다. 이날 들어간 비용은 모두 240만원. 시간이 곧 돈인 택시기사들의 일당은 제외하고서다.

한 달 수입 100여만원, 도시의 ‘막장 인생’으로까지 불리는 택시기사들이 봉사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국에 41개 지대(支隊)를 둔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가 그 주인공이다. 대원이 1만5400명인 이 봉사대의 주력부대는 택시기사들 중에서도 사정이 더 어렵다는 회사택시 기사들이다. 이들은 전체 대원의 75%를 차지한다. 최근 고유가와 경제위기 속에 택시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월급봉투는 더 얄팍해졌지만 봉사활동은 되레 확대되고 있다.

성동구의 한 회사택시 소속인 윤경만(52)씨는 “가급적이면 비번인 시간을 이용해 봉사에 나서지만, 시간이 안 맞을 때는 하루 수입을 고스란히 포기하고 봉사한다”면서도 “이럴 땐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도 마음만은 부자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는 그간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마련에 주력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무연고자 사랑의 장례’ 봉사를 시작했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찾아올 사람이 없이 외롭게 삶을 마친 무연고자들을 위해 장례식을 치러준다. 염습, 장례예식, 화장 등 장례의 전 과정을 마치 유족처럼 치른다. 3년 동안 제사도 지내준다. 첫 해인 지난해엔 19명을, 올해엔 최근까지 21명의 무연고자 장례식을 치렀다. 연말까지는 30명을 채울 계획이다. 무연고자 1명당 200만원의 장례비용이 들었다.

손삼호 봉사대장(69·개인택시)은 “서울에서만 매년 300명의 무연고자들이 마치 도시 소각장의 쓰레기처럼 화장터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살아있는 무연고 노인들에게 ‘장례제사 약속증서’를 주는 쪽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증서를 받은 무연고 노인이 숨질 경우 가족처럼 곧바로 장례식을 치러주는 방법이다. 지금은 무연고 노인이 숨질 경우 연고자 찾기와 검찰의 허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시신이 길게는 6개월 동안 병원 영안실 냉장고 안에서 방치된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도 여전히 큰 행사다. 지난해 16명을 포함해 봉사대가 설립된 1986년부터 최근까지 851명의 어린이를 치료했다. 여기에 든 비용은 30여 년간 모두 24억원이 넘는다.

전국 41개 지대의 연간 예산은 7억원 정도. 이처럼 적지 않은 돈을 박봉의 택시기사들이 어떻게 마련할까. 지난해 회계장부를 들여다봤다. 고정수입은 택시 안에서 껌을 팔아 벌어들인 돈이다. 하지만 껌 수입은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했다. 1만5000여 명의 대원이 매달 2000~1만원 정도 내는 회비도 있다. 나머지는 대원 중 일부가 품바 공연 등을 해서 벌어들이거나, 지원금·찬조금 형식으로 외부에서 지원받아 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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