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 병상 위의 리커버리샷을 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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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16면

세베리아노 바에스트로스

그는 마드리드의 라파즈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다. 의식은 없다.

뇌종양과 사투 중인 전설의 골퍼 바에스트로스

잘생긴 얼굴, 카리스마 넘치고, 열정적이며, 허세를 부리고, 모험을 즐기던 이 천재 골퍼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세베. 풀네임은 세베리아노 바에스트로스. 10월 6일 갑작스럽게 쓰러진 그는 15일 첫 뇌수술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열흘 사이 세 차례나 머리에 칼을 댔다. 그의 악성 종양은 뇌 깊숙한 곳까지 퍼져 있다고 알려졌다.

그에게는 기적이 필요하다.

바에스트로스는 리커버리샷의 천재다. 1979년 디 오픈 4라운드 16번 홀에서 그는 티샷을 골프장 주차장으로 보냈다. 그의 팬들 모두가 절망했지만 그는 주차장에서 핀에 공을 붙인 다음 버디를 잡아내 우승했다. “티샷을 똑바로 못 치는 주차장 챔피언”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우승이 운이 아니었음을 총 다섯 차례 메이저 우승(디 오픈 3, 마스터스 2)과 50차례 유러피언 투어 우승으로 증명했다. 골프장의 모든 곳이 그에겐 페어웨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의 회고다.
“너무 가난해서 클럽을 살 수가 없었다. 형이 버린 3번 아이언에서 헤드를 떼네 막대기를 붙여 클럽을 만들었다. 공이 없어 해변의 자갈을 쳤다. 밤에 골프장에 몰래 숨어 들어가 연습을 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배웠다. 어둠 속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본능을 배웠고, 어디로 튈지 모를 모난 돌을 치면서 감각을 배웠다.

세베의 롱게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는 16세인 1974년 프로로 전향해 76년 유러피언 투어 5승에 상금왕 타이틀을 땄다. 이 해 그는 디 오픈에서 준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와 슈거 레이 로빈슨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경기했다. 로빈슨이 상대 가드 사이로 설탕처럼 감미로우면서도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훅을 날리듯 세베에게 후퇴는 없었다.

그러나 전투적인 그의 성격이 몸을 망가뜨렸다. 그는 1977년 복싱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연습벌레였기 때문에 부상은 더욱 악화됐다. 특히 드라이버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는 드라이버 불안을 리커버리샷으로 충분히 만회했다. 티샷이 훅이 나 페어웨이 왼쪽으로 가면 드로샷으로 그린에 올렸고 슬라이스가 나면 페이드샷으로 그린에 갔다. 벙커든, 러프든, 언덕이든, 나무 위든 그는 파나 버디를 했다. 93년 유러피언 마스터스에서 세베는 엄청난 훅을 내 나무로 둘러싸인 수영장으로 갔는데 나무 틈으로 그린 근처에 공을 보내고 칩인 버디를 잡았다.

잭 니클로스는 자신이 본 최고의 샷 중 하나로 83년 라이더컵에서 세베의 페어웨이 벙커 샷을 꼽는다. “벙커 턱 바로 앞에서 3번 우드로 245야드 거리의 그린에 공을 올리더라”며 혀를 찼다. 폴 에이징어는 “그린사이드 벙커에서 세베가 3번 아이언으로 벙커샷을 해도 니클로스가 샌드웨지로 샷한 것보다 가깝게 붙였다. 손 감각은 최고”라고 말했다.

그는 78년 6주 연속 우승했고, 79년 디 오픈 우승으로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80년 마스터스에서 유럽 선수로는 처음 그린 재킷을 입었는데 그의 23세 우승 기록은 타이거 우즈가 97년 21세에 우승할 때까지 최연소 기록이었다.

바에스트로스는 유럽 골프의 얼굴이다. 그는 미국으로 오라는 PGA 투어의 제안을 거절하고 유러피언 투어를 일으켜 세웠다. 라이더컵에도 그가 생명을 불어넣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앞서던 라이더컵은 79년 미국-영국 대결에서 미국-유럽으로 확대되는데 세베가 합류하자 B급 대회가 특A급 이벤트가 됐다. 그는 라이더컵에서 20승5패12무의 기록을 자랑한다. 특히 같은 스페인 출신인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과는 11승2무2패를 기록했다. 말 그대로 무적함대였다.

그의 경기는 드라마였다. 아무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기적 같은 리커버리샷을 날리면서 살아났다. 그는 위험을 감수했고 대부분 이겼다. 그의 목표는 많은 버디를 잡는 것이었다. 보기를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 페어웨이와 그린으로만 다니면서 퍼팅 싸움을 벌이는 하품 나오는 요즘 드라마들과는 등급이 다른 영화였다. 그는 매우 잘생겼고 기쁨과 슬픔을 모두 표현하는 연기파였기 때문에 최고의 갈채를 받았다. 또 할 말을 했다.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에 대해 “훌륭한 선수”라는 판에 박은 대사밖에 할 줄 모르는 요즘 세태와는 매우 달랐다. 바에스트로스는 80년대 후반 “과거의 감각이 나오지 않는다.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내 몸속에 악마가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허리 부상이 악화되면서 90년대 후반엔 경기에 거의 나오지 못했다. 지난해 첫 챔피언스 투어에 나가 꼴찌를 한 후 골프와 안녕을 고했다.

19세에 오픈 준우승을 한 이 야심 많던 젊은이는 이제 51세다. 그는 올 초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인생은 꿈과 같은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나이를 먹는다. 그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일장춘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그보다 많다. 병 소식을 듣고 유러피언 투어에서 스페인 선수가 2주 연속 우승했다. 그들은 “세베에게 우승컵을 바치기 위해 우승했다”고 말했다. 팬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세베는 수술 직전 병원에서 “골프 코스에 대한 도전이 내 인생이었다. 지금 나는 가장 큰 도전을 맞고 있다. 나의 모든 힘과 팬들이 보내준 응원의 힘으로 이겨 나가겠다”고 답했다.
그에겐 리커버리샷이 필요하다. 그것이 그의 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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