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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국회 의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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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는 1930~50년 뉴욕시의 구조와 경관을 디자인했던 건축가이자 행정가였다. 그는 뉴욕의 주위에 여러 공원을 만들었는데, 특이하게도 존스비치 공원의 진입로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의 높이를 무척 낮게 설계했다.

그 결과 자가용을 가진 중산층 이상의 백인은 공원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지만, 주로 버스를 이용하던 흑인은 이 공원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백인만의 쾌적한 공원을 만들고 싶다는 모제스의 인종차별 의식이 건축물에 각인된 것이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 많았던 파리에서 혁명가들은 쉽게 바리케이드를 칠 수 있었고, 혁명세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으로 도시를 장악하곤 했다. 루이 나폴레옹3세는 이를 깨닫고 넓은 길을 내 도시를 재정비함으로써 반란군이 도시를 점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베를린이 아닌 카를스루에에, 체코의 헌법재판소는 프라하가 아닌 브르노에 있는데, 이렇게 헌법재판소 건물을 지방에 세운 이유는 헌법재판을 입법부와 행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건축물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건축물이 구현하는 가장 흔한 차별은 정문과 뒷문이다. 20세기 중엽까지도 독일 대학의 여성 교수들은 정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뒷문을 이용해 연구실과 실험실에 가야 했다. 영국의 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는 런던 시민을 대상으로 계층을 초월한 과학 강연을 위해 1801년 설립되었지만, 건물의 설계 초안에는 상류층이 드나드는 정문과 노동자 계층이 드나드는 후문이 따로 설계되었다. 이 디자인은 많은 비판을 받고 결국 폐기되었는데, 만약 이러한 차별적 구조가 실현되었다면 런던 빈민계급 출신인 패러데이가 이 왕립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과학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일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높은 담과 전용 공간도 격리와 차별의 구조물이다. 교도소의 높은 담장은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의 공간을, 고급 주택가의 높은 담장은 서민과 차별화를 꾀하는 부자의 특권과 오만을 상징한다. 내가 지난해까지 몸담았던 토론토대에는 교수 전용 주차장이 없었지만, 서울대에는 교수가 주차하는 공간과 대학원생이 주차하는 공간이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다. 순환도로에만 주차해야 하는 대학원생들은 주차 때마다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높은 '신분'의 벽을 실감할 것이다.

정문과 뒷문, 높은 담, 전용 공간이 삼박자로 존재하는 곳이 한국의 국회의사당이다.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출입을 가로막는 담장, 걸어서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위치와 구조, 고압적인 경비와 경찰, 신분증을 맡기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권위적 관행, 대리석의 전용 주차 공간, 의원의 특권을 상징하는 붉은 카펫,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의원 전용 정문과 자동문을 모두 갖추고 있다. 건축물이 구현할 수 있는 모든 특권을 전부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인은 의사당 건물 앞에까지 와서도 다시 5분을 걸어 뒷문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모든 규제가 '국회 청사 출입에 관한 내규'에 명시되어 있다. 민의를 떠받들어 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가 자신들의 특권을 상징하는 겹겹의 건물구조를 만드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법제화까지 해 보호했던 것이다.

17대 국회의 개혁과 관련한 여론 중에는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의 남용을 막는 것과 같은 '정치적'개혁에 비해 의사당 건물의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특권 의식은 특권이 구현된 건축물을 낳고, 이러한 건축물은 다시 특권 의식을 강화하며, 왜곡된 특권 의식은 부패와 밀실담합으로 이어진다. 건축물은 정치적 구조물이며, 국회의사당의 잘못된 구조를 바꾸는 것은 그 자체가 곧 정치적 개혁이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