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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린 외환위기 … 이젠 국내시장 안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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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것은 정말 잘된 일이다. 300억 달러의 효과는 바로 시장에서 나타났다. 환율은 떨어지고 주가는 치솟았다. 이번 협정으로 외환보유액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사실상 국가부도와 외환위기의 악몽은 말끔하게 정리된 셈이다. 그동안 어려운 물밑협상을 성공시킨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미국도 동맹국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는 통화스와프를 통해 한·미 동맹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그러나 아직 긴장을 풀 때는 아니다. 어디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정부는 여세를 몰아 일본·중국과의 통화스와프 한도를 확대하는 데 신경써야 할 것이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추진 중인 역내 공동기금 조성 계획도 차질없이 진행돼야 한다.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실감했다. 어느 나라보다 대외거래 비중이 높은 만큼 튼튼한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마련해야 한다.

외부 위험이 줄어들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부터 국내 시장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다. 환율과 국제 원자재 값이 떨어진 만큼 물가 부담 없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외채 상환에 세금을 투입할 걱정이 사라지면서 재정투자에도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이런 여력을 서민과 중소기업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돌려야 한다고 본다. 이미 중국산 먹거리 값이 뛰고 가계대출에 따른 이자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올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춥고 혹독할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질서 있는 후퇴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숨 돌렸다고 체질 개선을 소홀히 했다간 언제든지 경제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있다면 서서히 빠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질적 문제인 은행의 과다차입과 무분별한 대출도 시간을 갖고 확실하게 손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