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한국의 웃음산업-가짜웃음이 판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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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도대체 웃음이란 무엇일까요.사실 웃는다는 것보다 힘든 것이 웃기는 일이며,그보다 훨씬 까다로운 것이 바로 웃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아닐까요.
웃음을 그 사회의 집단적 정서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진단시약으로 여기는 일,예컨대 참새시 리즈로 5공때의 억압적 상황을 유추해 보고 최불암시리즈로 가부장적 권위의 실추를 짐작해보는 일은 이제 상식에 가깝습니다.틀림없는 사실은 이전 시대와 달리 요즘 우리 사회는 보다 공격적으로 웃음을 생산해내고 그것을 전파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어찌된 노릇인지 이제는 그 소리가 전혀 웃음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이래도 안 웃을까'하는 식으로온갖 고생을 다하고 있는 당신의 안타까운 몸짓도 어느덧 한계효용법칙에 사로잡힌듯 보입니다.
일체의 웃음이 사실상 금지되었던 지난 시대와 달리 우리의 90년대는 맘놓고 웃어도 될것 같은 시대처럼 보입니다.그렇다면 삶의 본질적 국면이 바뀐 것일까요.아니지요.여전히 우리는 유형무형의 강제,혼잡통행료,아슬아슬한 당산철교,좌충우 돌하는 청와대를 보며 살아갑니다.
혹시 우리는 이 환멸의 시대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려는 것은 아닐까요.방금 올라탄 열차가 안전하게 중산층역까지 질주하길 우리는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그래서 공통의 도덕과 공동의 웃음을 주형틀에 맞춰 생산한 다음 무지막지 하게 유통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학예술에 가해지는 국가 검열장치의 두 잣대,즉 권력과 성에대한 일체의 금기로 인해 당신만큼 고통받는 이도 드물 것입니다.저는 지금 그러한 당신에게,지난 시대의 거대한 자장력으로부터벗어나려는 악착같은 몸부림과 이 시대의 환멸을 애써 외면하고 한사코 중산층 신화에 매달리려는 욕망이 마주쳐 빚어내는 아우성같은 우리 시대의 웃음을 제어해 달라고 부탁드리려는 참이니 얼마나 곤혹스러우십니까.
하지만 진정한 웃음이란 절묘한 풍자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신이 바늘 끝보다 예리한 풍자의 힘으로 부풀려질대로 부푼이 허황된 시대의 가짜 웃음이라는 풍선을,가볍게 톡 찔러주십시오.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단한 것이며 우리가 딛고 있는 바탕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그리고는 마침내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통렬한 웃음을 마음껏 토해낼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삶에 대한 정직한 이해와 참다운 희망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그러니 그때까지는 참겠습니다.미안합니다만,당분간 웃지 않겠습니다.
□ 정윤수(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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