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과학 文盲'의 退治를 위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즘 「컴맹(盲)」이니,「넷맹」이니 하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컴퓨터를 사용할줄 모르거나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한글의 우수성 덕분에 글자를 해독 못하는 문맹률(文盲率)이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우리나라는 최근의 정보화열풍에 힘입어 「컴맹률」과 「넷맹률」도 선진국 수준으로 급격히낮아지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생활에 필수적인 과학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문맹률」은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도요원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현대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이제는 첨단기술을 이용한 가전제품들이 주택의 거실을좀더 차지하는 수준을 넘어 과학기술이 우리의 생활양식과 정치.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예를 보더라도 원자력발전소 부지와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라든가,시화호(始華湖)오염문제,간장및 분유의 유해물질파동등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문제들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과학기술의 문제였다.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정책당국자나 시민단체.언론,그리고 주민등 이해당사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불필요하게 갈등이 증폭되거나 합리적인 해결책이 도출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모든 과학기술에는 순(順)기능과 역(逆)기능이 있다.인류 문명의 시초를 만들었던 불(火)도 잘못 사용하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화재로 변할 수 있다.물자의 유통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자동차는 대기오염 유발과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손실 이라는 역기능이 있다.그러나 이들의 순기능에 의한 혜택이 역기능에 의한 손해보다 훨씬 크고 일반사람들도 그 유용성과 위험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불과 자동차를 사용하지 말자는 사람은 없다.
반면 핵발전소의 위험성이나 화학물질의 암 유발 가능성은 잘 이해하기 어려워 불필요한 두려움이 앞서고 합리적인 판단기초를 흐리기 쉽다.게다가 우리나라와 같이 사업추진체나 생산업자에 대한 불신(不信)이 강한 사회에서는 「우리 자식들 모두 기형아로만들 것이냐」는 식의 감정적인 구호가 이성적인 설득보다 훨씬 효과적이게 마련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 당국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조정역할이 중요하다.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의 과학적소양으로는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기에 난망(難望)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몇년전 원자력발전소를 국정감사하던 국회의 원이 발전소 부지안에서 측정된 방사선량(放射線量)이 영(零)이 아니라고 관리부실을 문제삼으며 호통쳤다는 일화가 있다.그 국회의원은 자연상태에서도 천연방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행정부 안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공무원의 20% 정도만이 이공계 출신이며,심지어 과학정책을 전담하는 과학기술처 안에도 상위직에는 기술직 공무원보다 행정직 공무원이 많은 실정이다. 이는 민간 대기업체 임원들의 50% 이상이 이공계며 일본의 고급공무원 선발에서는 기술직이 행정직의 3배 가까이 된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매우 후진적이다.그러니 소신에 따른 일관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경우에도 과학적 지식의 전문성과 객관성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눈에 띈다.이들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중립적인 전문가들의 참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그러나 일부 단체와 언론의 경우 「한건」하려는 심리상태와 전문지식의 부족으로 여러 면을 고려한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경우가 보여 우려된다.여러 사람들이 관련되는 문제에서 편파적(偏頗的)이거나 부정확한 발표는 억 울한 피해자를 무수히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과 지능을 가진 사람이면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과학적 정보를 수집하고 이에 기초해 합리적인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김포 쓰레기매립장 의 주민대책위원회가 이미 충분히 증명해 보이지 않았는가.
열린 가슴과 객관적 합리주의에 대한 신념만 있으면 누구든지 「과학문맹」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
吳世正 〈서울대교수.물리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