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민지의 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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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희성(1945~) '민지의 꽃' 전문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잡초를 가리켜 "아직 그 능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식물"이라고 한 에머슨의 정의가 떠오른다. 산골에 사는 민지에게는 질경이도 나싱개도 토끼풀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다. 그것을 화초와 작물과 잡초로 나누는 것은 어른들의 편견일 따름이다. 민지가 꽃이야, 부르는 순간 풀잎들은 또록또록 눈을 떴을 것이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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