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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가서도 연주자 섭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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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78년 37세에 이건산업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영주(사진) 회장은 87년 회사에 “인천에서 음악회를 열자”는 제안을 한다. 회사 중역들은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외국의 좋은 연주자를 매년 인천에 부르겠다는 계획이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초기의 반대를 이기고 시작한 ‘이건 음악회’가 올해로 19회를 맞는다. ‘프라하 아카데미아 목관 5중주단’의 연주로 첫회를 시작해 미국·독일·러시아 등에서 18개 연주단체를 불러 음악회를 계속해왔다. 유명한 단체보다는 덜 알려졌어도 실력이 알찬 연주자들로 꾸미는 것이 이 음악회의 전략이다. 음악회가 적은 편인 인천에 20여 년째 새로운 문화를 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회 음악회를 앞두고 이건산업의 인천 본사에서 만난 박회장은 “나는 좋은 장사꾼은 못 되는 사람”이라며 운을 뗐다. “규모가 작은 목재 회사가 80년대에 외국 연주자들을 불러 음악회를 열려 했으니 어땠겠느냐”는 것이다. 2006년부터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회장은 “돈이 남아서 예술 후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왜 그렇게 반대가 심했습니까.

“당시 작은 합판회사였는데, 판매액도 형편없었어요. 인천에 있는 회사인데, 임원진 중에 인천에 연고를 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인천에서도 좋은 음악회를 해보자’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제안했는데, 재정적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 뜻에 함께할 사람이 없었던 거죠. 공원에 시비(詩碑)를 세우자거나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자는 제안에 더 반응이 좋았죠.”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세 번째 중역회의 때 결국 ‘항복’시켰죠. 견적을 뽑고,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다. 십 년만 해보자’라고 주장했어요. 해외 무역을 꽤 하던 회사였으니 외국 연주자들과 직접 접촉하겠다는 거였죠. 젊은 사람 네 명이 기획을 시작했어요. 저 자신도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음악회를 갔고, 연주자를 직접 섭외까지 했죠.”

-직접 섭외하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2004년에 왔던 ‘마커스 로버츠 재즈 트리오’는 제가 시애틀 출장에서 직접 섭외했어요. 인터미션 때 연주자 대기실을 지키던 할머니에게 명함을 주고 ‘꼭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죠. 다음날 점심 같이 먹으면서 음악회 취지를 설명했어요. 편하게 진심으로 다가가니 연주자들이 마음을 열더군요.”

-19년째 연주자들에게 출연료 지급하려면 지금도 회사에 부담이 크지 않나요.

“액수를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부담이 있죠. 하지만 기업이‘이익 나면 문화 후원하겠다’고 하면 100년 가도 못해요. 생각 있을 때 바로 해야죠. 한국메세나협의회에서 중소기업과 예술단체를 결연하는 것도 이런 뜻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이에요.”

-외화가 뛸 때도 계속 외국 연주자를 부르는 이유는 뭔가요.

“98년 구제금융 때에도 연주회를 계속했어요. 실제로 힘들기도 하고 주변 시선도 있어서 취소하려고 했어요. 미국 ‘로드아일랜드 색소폰 4중주단’이었는데, 취소해야겠다는 편지를 써서 팩스로 보냈죠. 회신이 왔는데 출연료 없이 오겠다는 거에요. 이렇게 하면서 외국의 실험적이고 독특한 연주자들을 기다리는 ‘이건 청중’이 따로 생겼어요. ”

-음악에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가요.

“부모님이 음악을 참 좋아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가야금을 배웠죠. 외국 출장도 잦아 피셔 디스카우 같은 역사적인 연주자를 직접 만날 수 있었죠. 공연장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 티켓을 구한 적도 있어요.”

‘이건 음악회’의 19번째 연주자는 런던의 ‘스미스 콰르텟’이다. 현대 작품을 주로 연주하는 실험적인 단체로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등 굵직한 작곡가를 소개한다. 다음달 1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시작해 3일 인천 서구문화예술회관, 8일 서울 예술의전당 등 총 7번의 연주로 이어지며 티켓은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나눠준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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