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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한국인의삶>9.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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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기능의 실현을 위한 것같지만 생활용품에서 아름다움의 요구도 빠질 수 없다.알고자 하는 마음이 타고 나듯 아름다움의 추구도 사람의 타고난 마음이기 때문이다.아름다움은 기능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아직 쓸모 있는데도 단지 스타일이 낡았다는 이유로 새 용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날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판매」란 설득력 있는 말이 나왔고 그만큼 산업의 디자인적 실현이 중요시되고 있다.이 분야의 성공사례는 요즈음 성장세가 뚜렷한 이탈리아다.디자인을 앞세운 이탈리아 경제의 도약은 대량생산체제를 신봉해오던 경직된 자본 주의의 대안으로 사회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유연(柔軟)체제」를 앞서 실현했다 해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반면 우리는 경제외형의 성장은 뚜렷해도 디자인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못미치고 있다. 우리 디자인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자면 먼저 자기비판이 필수적이다.성공적 디자인은 상호 밀접히 연계된 복합요인의 결과이기 쉬워 성공요인을 일일이 가리긴 어렵지만 실패의 경우는 단한가지의 분명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걸 밝혀내 는 일은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선,우리 디자인의 부실은 가난을 면하고 보자는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부산물이다.농촌마을에까지 파고 든 아파트가 그 극명한보기다.표준규격품의 대량생산 하나만 신봉한 결과인데 천편일률의외관에 닭장처럼 차곡차곡 쌓인 아파트에서 삶의 다양한 요구는 묵살된 채 오로지 평수만이 전부인양 행세하고 있다.
안도 겉과 다를 바 없다.중산층 이상이 산다는 아파트 안으로눈을 돌려보면 대형 사무실에나 적합한 크디 큰 소파가 거실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주인인 사람은 소파에 묻혀있고 대신 소파가 주인인양 덩그렇게 자리잡고 있는 지경이다.
아파트 바깥으로 나가 만날 수 있는 반(反)디자인적 극치는 결혼식장의 치장이다.건축비를 아낀다고 층고(層高)를 낮게 만든것은 이해가 된다지만 거기에 싸구려 샹들리에를 치렁치렁 붙여놓아 낮은 층고가 더 낮게 보인다.게다가 온갖 곳 에 싸구려 잡동사니를 총동원해 「개칠」하고 있다.
우리처럼 디자인 비용에 인색한 사회도 없다.실내디자인 비용을인정치 않아 업자는 물량의 대량투입에서 그 비용을 뽑기 때문에아파트 같은데의 치장이 미감(美感)과 상관없이 요란하기만 하다. 둘째,외국의 선진기술 모방에서 출발한 우리 경제가 디자인도모방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함과 맞물려 있다.그 결과 심지어 유수대기업과 서울지하철의 로고가 미국항공사의 그것을 닮았다는 의구심을 산 바 있다.
셋째,우리 나름의 디자인 개발에 강박된 나머지 과거의 조형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지 못하고 묵수하는 꼴이 된 점이다.자랑스런 조형전통일지라도 그 외형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경복궁 안의 민속박물관은 법 주사의 팔상전을 그대로 키운 것이라 어쩐지 어색하고 거북하다.한옥 형태를거의 그대로 복제한 청와대 일부 건물도 마찬가지다.흙.나무.종이로 이루어진 한옥의 재질감이 시멘트.칠.유리로 짓는 현대 건물에서 되살아나지 못했고 자연과 어울 리도록 배치한 한옥의 공간감도 재현되지 못한 탓이다.
이제 우리 디자인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창의성 확대가 절대적인 당면 현안이자 장기 과제다.이를 위해 무엇보다 배움을 더쌓는 도리밖에 없다.
하나는 고급예술쪽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다.성공적 디자인은 예술작품에서 자극받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이를테면 지난 50년대미국 CBS텔레비전이 사용했던 로고는 20세기의 걸출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거짓 거울』을 닮아 있다.
또 하나는 역시 과거의 재발견이다.과거 없이 현재가 없다는 점에서,그리고 한국의 전통 조형감각은 참으로 자랑스럽기 때문이다.우리의 전통조형의식은 첫째 「자연의 미학」이 특징이다.백자등에서 볼 수 있듯 선이 살아있는 것이다.자연이 꼭 이러한데 디자인의 미래도 역시 「자연스러움」을 교과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한국사람은 단아(端雅)한 것을 평가하고 선호해왔다.단아함은 「비록 체질적으로는 작다 하더라도 구수하게 큰 맛이느껴지는 것」이다.「단아의 미학」은 이 시대가 간절히 갈구하는미덕이기도 하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화두(話頭),그리고 자원고갈등의 환경위기에 당면해 청빈(淸貧)의 덕목이 전세계적으로 강조되는 상황과 유관하다.
셋째,「모순의 미학」도 간과할 수 없다.『울다가도 웃을 일이다』는 우리 속담이 증거하는대로 모순을 진작 생활에서 수용하고있었다.얼마전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짚으로 만든 계란꾸러미가 좋은 보기다.계란을 안전하게 포장하자는 그 꾸러미 는 절반은 촘촘히 짠 바탕이고,절반은 그 바탕을 가로질러 계란마다 짚끈으로한 올 한 올 감싸고 있어 한쪽이 훤히 뚫려 있는 모습이다.똑같은 짚을 포장재료로 사용하면서도 계란을 통째로 감싸버리는 일본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절묘한 포장방법임이 분명하다.좋은 포장은 안전을 위해 그냥 감싸는 것이지만 더 좋은 포장은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그 안의 포장물이 처한 때깔.선도(鮮度)등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겠는데그렇다면 포장과 전시라는 모순의 동시적 실현이 전래의 우리 계란꾸러미였다.그야말로 실용과 멋의 조화다.한 안목은 이를 두고「포장문화의 원형」이라 찬탄하고 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지 싶다. 한국 디자인의 수준 향상에서 기업의 자구노력은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판매가 디자인에 달렸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발이 기대되는 쪽은 오히려 아름다움의 도모를 알게 모르게 배부른 타령이라며 깔아뭉개온 정부쪽이다.우리도 미국처럼 정부관련 사업에 경제성 뿐만 아니라 미관을 중요시하는 관행을 도입해야 한다.그렇게 되면 정부관행은 국민들의 미적 감 각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수준은 우리 국민수준」이란 말처럼 한국 디자인은 국민수준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국민들의 미감이 향상되지 않고는 우리의 디자인수준 제고는 공염불이다.우리 도자기 전통이 빛났던 것임은 세계적으로 잘 아는 사실이고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도자기가 우리에게 배워간 일본에 못미친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도자생활용기의 활용에서 일본이 우리를 월등히 앞선결과일 것이다.서민음식인 냉면은 보기에도 시원하고 넉넉한 도자기 그릇에 담아 먹으면 좋으련만 겨우 얄팍한 스테인리스 그릇에담겨 던져지듯 식탁에 올려지고 있음이 우리의 현실이다.
***국 민일반의 심미안 향상은 정부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종교가 맡아왔다.재력과 안목을 겸비했던 종교계는 동서(東西) 할것 없이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사회의 심미안을 높이는데 중요한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김수환 추기경이 자인한대로 유감스럽 게도오늘 우리 종교계는 그렇지 못했다.늦었지만 적절한 자기비판이 아닐 수 없다.
디자인은 말하자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노력이다.산업은 현대적 기술로서 비단(錦)스런 제품을 만들고 사회 각계는 비단결같은 안전과 편의를 제공해야 하지만 이것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기능과 편의와 안전의 「비 단」위에 꽃다운 아름다움을 수놓아야만 충분조건이 된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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