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스타 박찬숙과 CF 스타 서효명…모녀가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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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최근 SK텔레콤 TV 광고‘학교끼리 T타임 TTL 학교끼리 응원’편에 출연한 신예 CF 스타 서효명은 될성 부른 떡잎이다. 170cm의 큰 키에 시원스레 뻗은 몸매, 청순한 얼굴로 섹시하게 춤추는 그녀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서효명이 농구스타 박찬숙의 딸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취재_윤혜진 기자 사진_이진하(studio lamp)

일 년 전쯤 서효명을 만난 적이 있다. 지인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커다란 눈과 활달한 성격이 인상적인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게다가 왕년의 농구 스타 박찬숙의 딸이란 프리미엄까지. 조만간‘뜰’것이라는 예감이 스쳤다. 그 후 일 년, 에디터의 예감은 적중했다. 화려한 서막을 올리기 전 전야제처럼 여자 프로농구 춘천 우리은행의 얼짱 치어리더로 얼굴을 알린 그녀는 이제‘서효명’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현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프로필과 연관 검색어가 뜬다. 톱스타는 아니어도 주목 받는 의미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에게 주목 받고 있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그녀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서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CF에 예쁘게 나왔나요? 더 섹시하게 춤 잘 출 수 있었는데 너무 더워 실력 발휘를 못한 게 아쉬워요. 야구장에서 꼬박 24시간 동안 춤을 췄거든요.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 걱정 했는데 천성인가 봐요. 카메라 앞에 서니 떨리지도 않고 재미있었어요.”

신인치고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이어 가는 그녀. 외모는 전혀 닮은 곳이 없는데 엄마 박찬숙과 계속 어딘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찬찬히 그녀를 살피기 시작할 즈음 마침 박찬숙이 인터뷰 자리에 합석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냉커피를 타온 박찬숙은 사발 만한 커피잔을 내밀며 자리에 앉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막걸리를 따라 마셔도 될 만큼 투박한 컵이었다. 목이 탔는지 단숨에 비운 서효명의 커피잔을 보며 두 사람이 어디가 닮았는지 알 것 같았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 속사포 같은 빠른 말투, 화통한 성격. 역시 모녀는 닮았다.

“너 미쳤구나. 정말 할 수 있겠어?”
열번 물어 열번 모두‘예스’한 딸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박찬숙이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이아이팩’이라는 업체 사무실이다. 이아이팩은 스포츠 선수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는 업체. 자체 개발한 농구선수의 평가 시스템을 한국 농구연맹과 한국여자 농구연맹 등에 공급하고 있다. 사무실이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 위치해 있어 그녀는 요즘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박찬숙 선수 잘 지내시냐’고 인사했는데 지금은 인사가 달라졌어요. ‘요즘 딸이 잘나가던데 기쁘시겠어요’라고 이야기해요. 확실히 젊은 사람이 대다수라 효명이를 많이 알아보나 봐요.”

“그래요? 난 잘 모르겠던데…. 엄마랑 같이 다니면 모를까, 저 혼자는 아직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아직은 엄마가 저보다 훨씬 유명 하시죠. 예전부터 엄마랑 TV 출연도 많이 하고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하다 보니 이게 또 은근히 재미있더라고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의 주인공인 박찬숙은 요즘으로 치면 장미란.김연아 선수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딸 서효명은 어려서부터 언론매체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 방송 출연에 재미를 느꼈다. 평소 패션, 영화 쪽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방송 쪽으로 진출,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문제는 엄마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였다. 연기학원을 다니며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선포했을 당시 박찬숙은 딸에게“너 미쳤느냐”며 단번에 반대했다.

“제가 선수 때 방송국을 자주 드나들어 봐서 그 세계가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알아요. 우리 딸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죠. 또 열심히 준비하다가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할까 봐 그것도 겁났어요. 저도 제가 그렇게 좋아하던 농구를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겠다고 엄마한테 말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어머니는‘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결국 박찬숙은 자신이 좋아하던 농구로 돌아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삶인지 너무나 잘 아는 그이였다. 그래서 딸에게도 재차 물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엄마라는 이유로 꿈을 꺾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딸이 지칠 때까지 똑같은 질문을 열 번 했다.“ 너 정말 연기를 하고 싶니? 잘 할 수 있겠니?”그때마다 딸의 대답은‘예스’였다. 열 번 모두 예스라는 대답을 듣고 난 후 부터는 확실히 딸을 서포트 해주기 시작했다.

“제가 농구가 너무 좋아 농구공을 끼고 잤듯이 효명이도 그런 마음이겠죠. 용돈만 받으면 영화나 연극을 보러 다녔으니까. 운동선수든 연기자든 끼와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데 우리 효명이는 끼가 있는 것 같긴 해요. 예전에는 키가 좀 더 컸으면 했는데, 연기하려면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사실 연예기획사 명함을 받아도 엄마를 보여 주지 않은 때가 많았어요. 엄마랑 함께 연예기획사에 가면 그분들이 더 놀라셔요. 정말 엄마 맞느냐고요. 그런데 요즘은 엄마 덕분에 신중을 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지금처럼 이제 막 알아갈 때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고 항상 조언해 주셔요.”

박찬숙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 센터로 활약해 은메달을 딴 뒤 다음 해 은퇴하고 나서 결혼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섯.

꽃미남 남편 서재석씨(56)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1986년 첫째 효명을 낳고 2년 만에 선수로 복귀, 중국 대만행을 택했다. 이후 1991년 한국으로 돌아와 코치 겸 선수이자 엄마, 아내로 살아왔다. 현재도 본업 외에 대한체육회 부회장도 맡아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엄마 없인 못 살아
유명한 엄마, 이래서 좋다 vs 싫다

올해 그이는 쉰을 맞았다. 그러나 지금도 틈틈이 농구 코트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대학 강의와‘박찬숙농구교실’을 비롯해 열세 살 늦둥이 아들 수원이랑 놀아 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또래 주부들이 걱정하는 폐경기나 갱년기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제가 좀 젊게 사는 편이에요. 딸과도 친구처럼 지내죠. 같이 소주도 한잔하고 고민 있으면 이야기도 들어주고요. 딸이 대학에 입학했을때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에 가본 것도 제가 친구들과 놀게끔 예약을 해줘서예요.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결혼도 안 하고 평생 나랑
살겠대요. 아휴, 지겨워 죽겠어요.(웃음) 저도 이제 저만의 자유를 즐겨야 하지 않겠어요?”

“엄마도 참, 즐기면 되잖아요! 엄마는 말은 이렇게 하시지만 언제까지나 저와 제 동생 챙기느라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엄마 성격이 저랑 비슷한데 딱 한 가지 집안일 하는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엄마는 아무리 늦게 와도 청소기까지 밀고 주무셔요. 지금은 안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아침마다 숙제검사도 하셨어요.”

박찬숙은 매일 집을 비우다시피 하는 엄마로서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이 못놀아 주는 미안함을 하루 날 잡아 종일 놀아 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이가 그토록 노력해도 유명인 엄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있을 것 이다. 특히 효명양처럼 언론에 노출되는 직업을 택했을 때 2세 꼬리표를 떼고 홀로 서기는 쉽지 않다. 유명인의 2세로 산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것이랄까.

“전‘박찬숙 딸’이라서 좋아요. 오늘도 엄마 덕에 인터뷰까지 하잖아요. 대신 엄마가 유명하니까 사람들이 저도 뭐든 다 잘하는 줄 알아요.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엄마의 팬이셨는데 수업 시간마다 저에게 질문을 하셨어요. 제가 답을 못 맞히는 날은 잔소리하시느라 진도도 못 나갔어요.”

그이는 딸이 자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 게 하나 있었으나 그것만큼은 권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농구였다. 그이는 딸이 농구한다고 할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두 아이 모두 워낙 운동신경이 뛰어나긴 해요. 그래서 하고 싶다 하면 일찌감치 재능을 키워 줘야 하니까 효명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슬며시‘너 농구할래?’하고 물어봤어요. 다행히 안 하겠다더라고요. 그때 아주 기뻤어요. 전 효명이가 외교관이 되어 국위선양을 했으면 했거든요. 결국 제 헛된 바람이었죠.”

박찬숙은 자신이 대만에서 활동할 때 태어나 자란 딸이 중국어에 능숙하니까 영어 공부만 좀 더 하면 외교관으로 손색없을 거라 생각했단다. 그러나 딸이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단칼에 잘랐듯이 딸도 외교관은 싫다고 했다.

좋고 싫은 게 분명한 모녀다웠다. 두 사람은 그 일로 더는 서로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지금 모녀는 적당한 타협선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극중에서 얼마든지 외교관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일약 CF 스타로 떠오른 서효명은 조금씩 목표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지난 1월 게임 채널 온게임넷‘브리스톨 탐험대’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녀는 지난 9월 17일부터 MBC게임의 인기 프로그램인‘MSL BREAK’의 MC로 활약 중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아리수 모델로 발탁돼 태국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기도 했다. 떠오르는 샛별 서효명은 기본부터 천천히,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농구로 세계 주름 잡은 엄마
연기로 한국을 널리 알고픈 딸

“엄마가 농구로 국위선양했으니 전 영화배우가 되어 연기로 국위선양할 거예요. 지금 영화 미팅, 오디션 등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시나리오 들어온 것도 하나 있는데 아직 엄마에겐 보여드리지 않았어요. 너무 엄마한테 의존하면 안 되니까 최종 선택 때에서만 조언을 얻으려고요.”

“어릴 때 효명이에게 가장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옷만 입혀 키웠어요. 이제는 효명이 스스로 예쁜 꽃을 피워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딸이 반짝 스타가 되지 않도록 곁에서 꾸준히 조언을 해줘야죠. 우리 엄마가 해온 것처럼. 이거, 스타의 엄마 한번 되려다 등이 휘겠네. 돈 많이 벌어야겠어요.”

사랑하는 딸이 눈에 밟혀 결혼은 인생을 즐긴 뒤 늦게 해도 괜찮다고 어드바이스하는 팔불출 엄마 박찬숙. 그러다 혼기 놓치면 같이 살면 되니까 걱정 말고 하고픈 일을 다 해보란다.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이제 막 연예계에 발을 들인 딸은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엄마에게“나도 이제 어른이야”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스타로 살아온 엄마의 남모를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듬직한 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딸이 항상 품 안의 아이로만 보이는 엄마와 어른이 되어 엄마의 친구가 되고픈 딸. 두 사람은 오늘도 선의의 신경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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