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인색한 사과 솔직한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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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총련사태와 북한 잠수함침투 사건으로 부상한 「안보정국」은 이양호(李養鎬)국방장관 사건과 서울시 버스비리 사건으로「사정정국」으로 변화하고 있다.국방장관 사건과 버스비리 사건은 문민정부의 사정작업에도 불구하고 핵심각료를 포함한 공무 원과 기업인들이 아직도 과거의 검은 관행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그러나 이같은 충격 뒤에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국방장관 사건이 터져나오자 『대통령이칼국수를 먹고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고 있는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를 표명하고 비리척결을 지시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대통령의 검소한 생활과 정경유 착 근절의지는높이 평가할 만하다.또 金대통령이 이 사건에 분노를 느끼고 비리척결을 지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나아가 대통령이 각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만 청렴하다고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대통령은 자신 뿐 아니라 행정전반에 대해,특히 자신이 직접 임명한 각료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고 또 책임질 줄 알아야한다.민주주의는 「책임정치」라는 점에서 더욱 그 러하다.따라서金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단순히 분노를 표명하고 비리척결을지시하기에 앞서 진지한 대국민 사과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만이 아니다.문민정부 들어 정부,특히 대통령이 정부의 엄청난 문제가 드러난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에 인색해졌다.다시 말해 책임지는 태도가 약해졌다.북한 잠수함사건만 해도 국방예산을 늘리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촉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엄청난 국방공백을 야기한데 대해 국민에게 최소한 사과하고 필요하다면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그러나 사과도 없었고 관계자들은 오히려 국방장관 사건을 계기로 승진했다.
문민정부가 자신의 정통성을 믿고 과거 군사정권에 비해 오히려국민에 대해 더 「권위주의적」이 된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나아가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은 권위가 실추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그러나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정부는 진정한 권위를 갖게 된다.
이와 대조적인 것이 서울시 버스비리 사건에 대한 조순(趙淳)시장의 솔직한 대시민 사과다.趙시장은 이번 사건으로 「포청천」에서 「고개숙인 남자」로 전락했다.그러나 국방장관에 비해 훨씬낮은 비리공무원의 직급을 고려할 때 그들의 일거 수 일투족을 통제하기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솔직한 사과를 했다.
서울시 비리사건 이외에도 비교가 될 수 있는 것은 최근 문제가 된 한 가수의 표절시비다.인기가수 김민종의 히트곡 『귀천도애』가 일본곡의 표절로 밝혀지자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팬들에게사과하고 사죄의 뜻에서 당분간 가수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표절은 근본적으로 작곡가의 책임이고 작곡가가 수많은 외국곡중 하나를 표절했는지 여부를 가수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분명히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서울시장이나 가수와 비교할 수 없이 높다.그러나 그 높은 권위가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국민에게사과하는 것에 인색하다고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국민이 존경하게 되고 그 결과 진정한 권위가 생겨나고 지켜질 수 있다.
지난해 金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김대중(金大中)총재의 「노태우(盧泰愚)비자금」문제에 대한 이 두 정치지도자의 대응과 관련,한국정치의 현주소는 대선자금을 당에서 받았는지 몰라도 『나「는」 안받았다』는 金대통령의 「는의 정치」와 『나 는 20억원「뿐」이 안받았다』는 金총재의 「뿐의 정치」가 맞부딪치는 「는과 뿐의 정치」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결국 국방장관 사건은 아직도 『나「는」 깨끗하다』는 「는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음을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최고지도자는 자신만 깨끗하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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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浩哲 〈서강大교수.정치학〉 손호철 서강大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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