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십자委 '이라크 보고서' 전문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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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영 동맹군이 관리하는 이라크 내 교도시설에서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밝혔다.

ICRC는 10일 전문을 공개한 '이라크 내 수용소 포로들의 처우'라는 이름의 24쪽짜리 보고서에서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잔인한 학대가 벌어졌다"며 "잔혹행위들은 이성과 합법성.적합성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몇몇 동맹군 부대에선 일상적 업무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ICRC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29회에 걸쳐 캠프 크로퍼.아부 그라이브.알 살리히예 등 이라크 중.남부 지역의 14개 구금시설을 조사했으며 보고서는 지난 2월 동맹군에 제출됐다.

*** 포로 다수 실수로 잡혀

동맹군의 한 정보 관계자는 "체포된 사람들 중 70~90%는 실수로 잡혀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체포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가족들에게도 구금 장소.기간 등을 알려주지 않았다.

두 아이를 둔 한 28세 남성은 지난해 8월 바스라에서 체포된 뒤 심하게 구타를 당하다 사망했다. 지난해 9월 체포된 61세 남성은 "머리에 두건을 쓴 상태에서 엔진으로 추정되는 뜨거운 물체의 표면에 앉도록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절했고 엉덩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보고서는 "포로가 신문에 협조하도록 만들기 위해 종종 고문 수준에 이르는 신체.정신적인 학대가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사용된 수법은 ▶질식할 정도로 두건을 겹씌우기▶마구잡이 구타▶알몸으로 독방에 가두기▶알몸 행진 시키기▶(남성 포로에게)여성용 속옷을 입히거나 씌우기▶심한 소음에 노출시키거나▶섭씨 50도 더위에 방치하기 등이다.

지난 10월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한 정보 관계자는 "이런 학대는 일종의 신문과정"이라고 말했다. ICRC 의료진은 신문당한 포로들에게서 집중력과 기억력 손상, 말하기 장애 같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 고위직 출신, 독방 감금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 출신 고위인사들은 대부분 독방에 감금됐다. 2003년 6월 이후 체포.수감된 고위인사는 모두 100여명. 이들은 하루 23시간, 길게는 5개월씩 빛이 안 드는 좁은 독방에 감금됐다. 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하루 20분씩 두차례의 운동시간뿐이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간수의 감시하에 사용할 수 있었다.

정치 관련 서적이 아니면 반입이 허용됐으나 신문.잡지류는 금지됐다. 이슬람 경전 코란은 2003년 8월 이후 반입이 허용됐다.

캠프 크로퍼 수용소에서는 음식.물까지 제한했다. 이에 따라 "먹을 것을 달라"는 시위가 발생하자 수용소 측은 시위대에 위협사격을 가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해 철조망을 뚫고 도주하려는 수감자들에게도 총을 쐈다.

2003년 5월과 6월 사이에 캠프 크로퍼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이라크인 수감자 10명이 부상했다. 같은 해 아부 그라이브와 캠프 부카에서도 수감자들이 교도소 내 가혹행위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자 감시탑에서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총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

*** 여러 차례 시정 권고

ICRC는 ▶지난해 4월 카타르 도하에 있는 영국군 사령관 정치고문에게 움 카스르 캠프의 포로 학대에 대해 구두 보고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지난해 5월엔 미군 사령부에 200건의 학대 사례를 문서로 보고했으며▶지난해 6월엔 동맹군 측에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있는 캠프 크로퍼에서 일어난 50건의 학대 사례를 보고했다.

박소영.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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