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노벨상 특수와 소설 읽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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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68)에게 돌아갔습니다. 요즘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읽는 작가랍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르클레지오가 차지하는 자리는 좀 애매모호해 보입니다. 그렇게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국내서 번역·출간된 그의 책들이 적지 않은데, 잘 들여다보면 ‘품절’ 표시가 된 책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한마디로 오락가락합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사막』은 현재 독자들이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합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이 작품에 대해 특별 언급을 했습니다. “이민자들의 눈에 비친 북아프리카 사막의 잃어버린 문화가 잘 그려진 작품”이라고요(본지 10일자 21면).

그런데 이 책은 ‘절판’된 상태입니다. 저작권 개념이 부실하던 90년대에한 출판사에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출간했다가 판매를 중단한 것입니다. 그리 찾는 독자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지금까지 이 책은 다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그가 국내 독자들과 친해지지 못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기도 합니다. 처음에 소개될 때부터 일관되게 이 작가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공들인 출판사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죠. 그는 “대가가 신인작가처럼 출판사를 전전하는 양상이었다”고 했습니다. 출판사도 번역자도 들쭉날쭉이고, 번역의 질도 편차가 커서 독자들이 작가의 진가를 접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이 작가를 잘 알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관심도 많은” 최수철 교수(한신대 문예창작과)가 꾸준히 번역·소개한 것이 다행이라고도 했습니다.

어쨌든 르클레지오의 수상이 밝혀지면서 출판계는 술렁이는 모습입니다. 『조서』를 낸 민음사, 『황금물고기』『아프리카인』』등 다수의 책을 낸 문학동네 등은 갑자기 쇄도한 주문을 소화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른바 ‘노벨상 특수’입니다. 2006년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의 경우 노벨상 발표 뒤 10만 부나 더 팔렸으니 기대 할 만도하지요.

그러나 한 켠에선 “요즘 독자들이 호흡이 긴 장편은 선뜻 집어들지 못한다”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본소설을 제외하고 장편 시장이 그만큼 흔들려왔다는 얘기입니다.

르클레지오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소설가는 철학자도, 언어 기술자도 아니다”라며 “나는 글을 쓰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나는 쓰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그리고 모든 작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독자입니다. “나는 읽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읽는다”고 말하는 독자 말입니다. 그런 독자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르클레지오의 『사막』이 이달 말 재출간된다고 합니다. 르클레지오가 한국 독자들에게 다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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