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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는 없애는 게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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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회에서 세제개편을 둘러싼 여야 간의 논쟁이 뜨겁다. 그 한복판에 종합부동산세가 자리 잡고 있다. 기준과 세율 완화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본질 논쟁은 간데없고, 이젠 ‘나는 얼마 내는데 너는 얼마 내냐’ ‘불필요한 재산을 많이 갖고 있으면 더 내야 한다’는 식의 논쟁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한 말들만 오고 간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종부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지난 정권의 속성을 규정하는 이념적 도구였다. 흔히들 말한다. 세금이란 모름지기 보편성을 갖춰야 한다고. 하지만 종부세에서는 그런 보편성을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보유세는 지방정부의 행정서비스에 대한 대가라고 한다. 하지만 종부세는 애초부터 국세라는 기형적 모습으로 출발했다. 그나마 2003년 10·29조치에서 규정했던 여러 방안들은 세금의 형태를 더욱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 토지를 대상으로 했던 것이 주택으로 확대됐고, 시행 1년 만에 9억원 초과 주택은 6억원 초과로 강화됐는가 하면 개인별 합산은 세대별 합산으로 바뀌는 등 그야말로 제멋대로 바꿔놓은 것이 지금의 종부세다.

종부세 세수는 지난해 1조원 남짓, 현 세법대로 거두어도 올해 2조6000억원 정도다. 수조원의 재정 흑자를 내던 상황에서 종부세 도입을 세원 확충이라 볼 수도 없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장해 온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는 재산세라는 기존 세목의 실효세율을 높이고 양도세와 취득·등록세의 인하를 말한 것이었지 종부세라는 기형적 세목의 신설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금에 계층 간·지역 간 차이를 이념적으로 버무려 놓아 이젠 시행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마저 정치적으로 어렵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재산이 있으면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한다. 맞다. 단일세율로는 미흡해 누진세율을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금이나 이자·배당 등 각종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재산을 물려받을 때는 증여세나 상속세를 누진적으로 더 내야 한다. 여기까지는 문명사회라면 다 갖고 있는 사회적 합의다. 하지만 실현되지도 않은 소득에 대해, 더욱이 자산의 양태나 규모를 자의적으로 규정해 세금을 누진적으로 매기겠다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자산을 부동산으로 갖든, 유가증권으로 갖든, 귀금속이나 골동·서화로 갖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부(富) 자체의 과다가 문제라면 차라리 모든 자산을 합쳐 부유세를 매기는 게 논리적으로는 옳다.

적잖은 사람들이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이며 가진 사람들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다. 물론 가진 계층의 그런 도덕적 책무는 중요하며 더욱 고양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현대의 소득·상속·증여세나 건강보험체계 등에 그런 요소가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설령 그것으로 미흡하다 해도 이를 원칙에도 맞지 않는 세금 신설로 강제한다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 도덕적 책무는 결국 스스로 느껴 스스로 이행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현대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이 누진적 세금체계이기도 하다.

주위에 돈도 많이 벌고 재산도 많은데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이 널렸지 않으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 정해진 세제에 따라 세금을 제대로 거두는 것이 순서다. 탈세는 사회가 만든 최소한의 합의조차 깨뜨린 행위이므로 철저히 추징한다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문제는 종부세라는 부적절한 세금이 어쨌든 몇 년간 시행됨에 따라 종부세의 폐지는 고사하고 완화조차도 있는 사람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는 것, 아울러 거래세 완화에 따른 재산세 실효세율 상향조정이라는 타당한 조치는 그렇다면 없는 사람에게 더 내란 말이냐는 반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으로선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 대해 잘 박은 대못이라며 쾌재를 부를는지 몰라도, 이 나라의 세제를 위해서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종부세 완화·폐지를 공약으로 걸었던 여당조차 정치적 현실을 들어 미적거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단계적 이행에 대한 정치적 절충은 불가피할지 몰라도, 이른 시일 안에 종부세를 폐지하고 부동산보유세는 단일세율의 지방세로 한다는 합의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뤄지길 기대한다.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