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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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앞으로 구실장이 결혼하는 날 구실장이 가지고 있는 그 순결은 신부에게 바치는 무엇보다도 값진 패물이 될 거예요.신부에게순결을 요구하는 것 만큼이나 신랑에게도 순결이 요구돼야 마땅한데,동정(童貞)이 부담스럽다니 무슨 해괴한 말입 니까?』 애써냉정히 타이르다가 점점 격앙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부담스러운 물건을 버리는 쓰레기통 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명색이 사장인데 예우 좀 해 주세요.실장을 파견해 주신 아버님한테도 면목 없는 짓입니다.얼른 일어나 앉으세요.』 시멘트 바닥에 앉은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던 구실장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무실 문쪽으로 걸어나갔다.
문앞까지 가다 그는 을희를 뒤돌아보고 신음하듯 했다.
『옛날,제 이마의 땀을 닦아주신 그 하얀 손수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리고는 제 뺨에 키스해주셨지요.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그 추억이 제 사춘기의 버팀가지였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어두운 밤거리로 나섰다.골목 밖엔 순경이 지켜 서 있을 것이다.「통금위반」은 즉심에 넘겨지고 구류를 살게 된다.
『구실장!』 을희는 뛰어가 골목에 나선 그의 팔을 낚아 사무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불로 뛰어드는 나방같은 행동이에요.들어갑시다.』 등을 떠밀었다.사무실 문을 도로 잠그고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선 을희를 구실장이 껴안았다.그는 소중하고 가뿐한 날개처럼 을희를 떠받들고 사무실 안쪽을 향했다.우람한 그의 가슴에서 을희는 무력했다.사무실 안 막다른 데는 내실이 있었다 .온돌방을 사랑하는 을희의 서재겸 응접실이었다.
해당화빛 보료가 깔려 있었다.
구실장은 보료 위에 을희를 눕히고 묵묵히 자기 옷을 벗었다.
셔츠를 벗고 바지를 내리고….
을희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이에요!』 벌거숭이가 된 구실장은 울며 을희에게 큰절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사나이의 목숨을 걸고 약속드립니다.저를 남자로 만들어 주십시오.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어째서 그런지 을희도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주체하기 어려웠다.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지극한 구애(求愛)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죽은 남편과는 소년.소녀처럼 만나 「아이스크림 사랑」을 했고,헤어진 남편은 강간하다시피해 을희의 육신을 가졌다.그런데 이연하(年下)의 청년은….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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