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차가 몰려온다 ⑤-끝]혼다가 로보트를 만드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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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기 혼다 연구소에서 버스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혼다의 모테기 트윈링 레이싱 서킷(Racing Circuit). 매년 두번씩 인디레이스 등 포뮬러1(F1) 머신의 레이스가 열리는 곳이다.최고 시속 330㎞의 질주를 관람하려는 수만명의 모터 스포츠 광들이 진을 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주변에는 바퀴가 있는 각종 놀이시설과 혼다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서킷 오른편에는 가족용 자동차 체험관 '팬 펀 랩(Fan Fun Lab)'이 눈길을 끈다. 이 홀에 들어서면 중앙 무대에서 키 120㎝, 몸무게 52㎏의 초등학교 2,3학년 아동을 연상시키는 로보트를 만날 수 있다.혼다가 2000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사람처럼 걷는 로보트 '아시모' 다. 아시모(Asimo)는 'Advanced Step in Innovative Mobility'의 약자다.등에 메고 있는 가방 같은 것이 컴퓨터다.배터리는 배 부분에 들어 있다. 아시모는 기자에게 10여분 동안 손 흔들기, 한발로 서기에 이어 음악에 맞춰 국민 체조를 연상시키는 체조와 춤을 선보였다.아시모는 현재 일본 대기업 본사 로비에서 손님을 마중하는 안내 로보트로 7대 정도가 사용된다고 한다. 무대 오른편으로는 지금의 아시모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로보트 10여점이 진열돼 있다. 자동차 회사인 혼다는 왜 로보트를 만들었을까? 혼다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사장은 "혼다는 움직이는 모든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빌리티 회사가 목표입니다.소형비행기,로보트뿐 아니라 UFO같은 비행체도 연구 대상입니다.아시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화상 인식이나 인공지능 기술은 자동차 개발에도 연결됩니다."고 말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편리하게 해주는 모든 이동체를 만들겠다는 의미다.앞으로 아시모는 사람이 작업하기 어려운 환경(우주 공간 등)에서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는 로보트로 쓰일 예정이다. 아시모 이름을 지어 준 코이케 아키오(小池昭男) 연구부장은 "1980년대 중반 개발에 들어가 16년 연구 끝에 2000년에야 사람처럼 걷게 됐다"며 "아직까지 최고 시속 5㎞에 불과하지만 빠르면 수년내 달리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동작은 100%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존한다.콘트롤 박스에서 일부 동작은 무선으로 조종한다.사람을 인식하는 기능은 지난해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능해졌다. 혼다는 로보트 뿐 아니라 제트기도 개발했다.미국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난지 꼭 100년이 되는 지난해 12월,미국에서 자체 개발한 엔진을 단 제트기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章一郞)의 꿈이 이뤄진 셈이다.그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원래 항공기 제조 회사를 꿈꿨다고 한다.1962년에는 "꿈을 주는 레이싱이 없으면 선진 자동차 업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며 일본 최초로 스즈카시에 포뮬러 규격에 맞는 레이싱 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혼다는 창업자의 항공기사업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86년 소형기 개발에 착수,93년 자체 개발한 기체에 다른 회사 엔진을 탑재해 첫비행에 성공했었다. 자동차 업체중에는 처음부터 항공기 엔진 회사로 시작한 회사가 꽤 많다.독일 BMW를 비롯,스웨덴의 사브,일본의 수바루 등이 대표적이다.하지만 자동차 회사가 비행기의 기체·엔진 모두를 독자 개발한 것은 혼다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렇듯 혼다는 자동차를 넘어선 새로운 모빌리티 개발에 힘을 모은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한국의 현대자동차가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인 도요타를 앞질렀다는 미국 자동차 전문조사기관인 JD파워의 조사 결과다.새 차를 산 고객을 대상으로 브랜드별 품질만족도 조사에서 현대차(7위)는 도요타나 벤츠,BMW를 제쳤다. 쏘나타는 특히 중형차 부문에서 1위, 회사별 종합평가에선 현대차가 혼다와 공동 2위를 차지했다.도요타의 렉서스는 고급차 시장에서 1등을 했다.(미국에선 도요타.렉서스 두 브랜드로 평가한다.혼다 역시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와 혼다로 나뉜다.) 도요타·혼다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다.시장 점유율도 각각 10%에 달한다.벤츠와 BMW는 두말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다. 미국에서 '값싼 차'로 인식되던 현대차가 이젠 품질에서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셈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37만5000대(시장점유율 2.5%) 를 팔았다.일본차 못지 않은 서비스와 10년 무상 수리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앞으로 내구성과 중고차 가격 등에서 상위로 올라서면 현대차는 브랜드 가치가 있는 차로 대접 받게 된다. 미국에서의 약진에 비해 내수 시장에서는 어떤가.현대차 등 국산차 업체들은 일본차 진출에 긴장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된다.특히 내구성과 서비스 만족도에 신경 써야 한다.뒤진 기술은 집중적인 투자로 따라 잡으면 된다.전국에 빼곡히 들어선 판매조직과 서비스망을 믿고 고객을 홀대 했다가는 뼈아픈 실수를 할 수 있다. "서비스에서 실패하면 영원히 고객을 잃게 된다"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모테기=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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