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행복한 개혁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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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빈민가의 공립 중학교인 키 아카데미의 세라 헤이즈 교장은 지난해 신임 교사 두 명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학력이나 추천서는 훌륭했지만, 그들의 수업은 산만했고 학생 성적은 평균 이하였다. 헤이즈 교장은 그들이 수업을 잘하도록 각종 연수에 참여시켰으나 효과가 없었다. 결국 지난해 말 두 교사를 해고하고 실력이 검증된 교사들을 채용했다. 그러자 학생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올해 워싱턴DC에서 실시된 학력평가 결과 수학에서 92%, 독해에서 57%의 학생이 ‘우수’ 평점을 받았다. 워싱턴DC 평균(수학 32%, 독해 34%)을 크게 웃돈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달 29일 이 사례를 들면서 “실력 없는 교사를 해고해야(fire) 교육이 산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일반 공립학교에선 교장이 교사를 해임할 수 없다. 교장은 문제 교사에게 경험 있는 교사를 붙여 조언하거나 학생의 학력 저하에 불만을 표시하는 정도만 할 수 있다. 교사 채용 규정과 임기 보장 등으로 문제 교사를 교단에서 퇴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러나 키 아카데미 중학교는 교육청이 재정을 지원하면서도 운영은 비영리 민간기관에 맡긴 자율 학교여서 교장이 교사를 해임할 수 있었다.

키 아카데미의 성공에는 한국계인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이 있었다. 그는 교장 권한을 강화하는 등 학교 자율성 확대에 힘을 쏟았다. 나아가 공립학교 교장에게 교사를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능력 있는 교사에게는 연봉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 이상 주는 대신 실력이 부족하면 과감하게 퇴출시켜 공립학교 교육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워싱턴DC의 교원노조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미셸 리 교육감은 29일 워싱턴DC의 내셔널 프레스클럽 초청 강연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결론은 없다”며 “여러 당사자들이 조금씩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필요한 개혁은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셔널 프레스클럽은 한국의 기자협회에 해당한다. 미셸 리는 “지난 1년간 교육감 경험을 통해 ‘4C’를 너무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4C는 협력(cooperation), 협동(collaboration), 합의구축(consensus-building), 양보(compromise). 그는 “다른 지역 교육 관계자로부터 ‘개혁 기준을 마련하는 데만 18개월이 걸렸는데 막상 기준을 정해 놓고 보니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문제는 협동의 기간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교원노조와 협력해야 하지만 무한정 협력할 수 없으며, 교원·학부모들과 개혁 기준을 정하는 등 협동도 필요하지만 무기한으로 협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교육 위기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학생들에게서 비롯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정재홍 기자

◆미셸 리 교육감(38)=지난해 9월 워싱턴DC 교육감으로 발탁된 미국의 첫 한인 교육감. 미국에서 학생 1인당 투자하는 교육 예산이 가장 많은데도 학력 평가 결과는 최하위권인 워싱턴DC 교육을 경쟁력 있게 변모시켰다. 뉴스위크는 지난해 말 그를 ‘2008년 주목할 만한 인물’로 선정했다. 코넬대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뒤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을 포기하고 볼티모어 빈민지역 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자원봉사하는 등 교육 개혁가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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