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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60주년 세계석학 특별기고 ② 포용정책은 통일을 위한 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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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5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사회과학자들이 주목할 만한 실험이 있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 남한과 북한은 서로 상당히 다른 발전전략을 택했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남한은 국제무역에 힘쓰는 개방형 발전전략을 추구했다. 북한은 중앙계획경제를 택했고, 시장기능을 극도로 억제해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만들었다.

남한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장기 경제발전 계획을 시작한 1963년부터 금융위기를 겪은 97년까지 1인당 실질소득은 매년 약 6%씩 성장했다. 63년 남한의 소득 수준은 볼리비아와 모잠비크보다 낮았으나, 97년에는 그리스와 포르투갈보다 높아졌다. 북한은 90년대에 인구 2200만 명 가운데 60만~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20세기 가장 참혹한 사태 중 하나였다.

경제성장만큼 놀라운 건 남한의 정치발전이다. 87년부터 97년까지 불과 10년 동안 남한 정부는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직접선거로 선출된 노태우 정부로, 중도성향 민간 정치인 김영삼 정부로, 그리고 반독재 민주화 투사였던 김대중 정부로 바뀌었다. 세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햇볕정책’이라는 대북 포용정책을 시작했다. 남북한 교류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교역규모는 98년 2억2200만 달러에서 2007년 18억 달러로 늘었다. 북한을 방문한 남한 사람들은 3000여 명에서 25만여 명으로 늘었다. 남북한이 상호 불신과 적대적 관계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걸 감안한다면 초기 남북 경제협력 사업들이 잘사는 남한이 가난한 북한에 선의를 보여주기 위한 ‘퍼주기’식 지원이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고, 어찌 보면 적절한 것이었다.

남한의 중소기업들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확보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면 남북경협 공단사업은 옳은 일이다. 개성공단은 이제 북한 근로자 3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햇볕정책’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북한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기안됐다. 그러나 이 정책은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포용정책은 인도적 지원과 장기개발 지원으로 구분해 추진해야 한다. 북한은 현재 저조한 곡물생산과 치솟는 국제 곡물가 탓으로 식량난이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 굶주린 북한 주민을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장기개발 지원의 경우 지원조건을 분명히 하고, 상호주의 원칙도 지켜야 한다. 내부 개혁이 없을 때 지원의 효과는 거의 없다.

 포용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북한 사람들에게 시장경제를 교육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포용정책 실행과정에서 시장원칙을 적용하고 북한에 시장경제도 가르치려면 민간 부문의 참여가 중요하다. 경제협력 사업의 경우 국가가 임의로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장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로 옮기는 대신 북한에 투자하는 남한 기업들에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다. 세금 혜택은 민간기업들의 효율적인 경제행위를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실행해 나가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햇볕정책’은 원래 통일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포용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것 같다. 포용이 수단이냐 목적이냐라는 개념 논쟁은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것이고, 그 결론은 남북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정책의 기조가 달라졌다며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포용정책은 남북한의 근본적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이어질 것이고, 또 이어져야 한다. 문제는 포용정책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수단으로 포용정책을 펼쳐 나갈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마커스 놀란드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중앙데일리 이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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