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어머니의 보따리 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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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의 무엇에 그리 끌려 하나같이 다 올라오는지 모르지만 전라도 고흥에서 18년을 지낸 나 또한 3년전 남에게 더 뒤질세라 부랴부랴 상경했다.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코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고 눈시울이 따끔따끔해 눈물 두어 방울 흘린후막내딸의 떠남이 아쉬워 보따리 보따리 김치며 바다생선.고춧가루.마늘을 싸주신 엄마의 정성을 앞세우고 서울에 발길을 내디딘게엊그제 같다.왠지 불안한 마음에 떠나는 그날까지 갖은 신경질과투덜거림을 늘어 놓았지만 엄마는 전혀 동요없이 처음 계획한대로착착 하실 일을 하셨다.
냉장고에서 하나하나 꺼내 『이 고동은 먹을 만큼만 꺼내서 양념하고 나머지는 냉동실 보관,참기름은 김 나가지 않게 꽉 잠가보관,여기 깨하고 고춧가루는 아끼지 말고 반찬 담을 때 멀겋지않게 듬뿍 넣고….』 『엄마 제발 그만 싸세요.서울에는 택시잡기도 힘들고 내 손은 두개뿐인데 어떻게 다 들어요.』 아는 이라고는 먼저 상경한 언니.오빠 외엔 아무도 없지만 엄마가 싸주신 빨간보따리.파란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마중나온 언니와 겨우겨우 택시를 잡고 그 안에서 새삼 그 보따리를 안아보았다.
이제 나는 3년경력의 서울처녀가 됐지만 여전히 시골보따리는 면하지 못하고 있다.
늘 언니.오빠.내가 합세해 엄마의 보따리정성을 말리려 하지만엄마는 여전히 때맞춰 서너개의 보따리를 보내주신다.
며칠전 이모 아들 돌로 인해 서울에 상경한 우리 엄마.『힘드시니 제발 아무것도 가져오시지 말고 그냥 오세요.』신신당부 했지만 서울에 도착한 엄마 손에는 또 보따리 세개가 들려있었고 어머니의 여윈 어깨는 더욱 늘어져 보였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집 밥상이 푸짐하지만 엄마의 그 마음을 여전히 투덜거림으로 답례하는 것은 무슨 철없음인가.
오늘 아침 빈보자기와 김치통을 들고 터벅터벅 버스에 오르시는어머니.『너는 꽃처럼 곱구나』하며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어머니의 이마엔 세개의 깊은 물줄기가 출렁인다.
11년전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후 당시 겨우 10세인 막내와그 위로 13,16,19,21세의 다섯 남매를 그 힘든 농사일을 하시며 이렇게 모두 성인으로 키워주신 이 세상에 단 한분뿐인 엄마.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요.』눈시울이 흐려지며 엄마의 뒷모습이가물가물해진다.
정희경 서울노원구월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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