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철학자서 한의사까지 김용옥 서울大의대객원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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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부활극을 일명 호스(馬)오페라라고 한다.80년대 김용옥(金容沃)의 등장은 건맨의 출현과 흡사했다.세상을 읽어내는 한 철학자의 인식의 전방위적 건 플레이는 사실 충격이었다.그것은 철학오페라 혹은 무협철학을 방불케 했다.많은 사람들 이 다만 그의 육두문자를 빼고 그 현하지변(懸河之辯)에 매료됐다.새로운 지적 지평에 개안했다고 열광하는 사람도 있었다.또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의 강물에 떼밀려 표류하다 방향을 잃기도 했다.그리고김용옥은 오페라 공연 도중 저격당했다 .왜 그랬는지 사정은 분명치 않다.그의 테러적 언사가 그에게 부메랑이 되었는가.분명한것은 우리 학계의 용렬함이 한 박식한 동양철학 에세이스트의 분출하는 문화비평욕을 틀어막았다는 사실뿐이다.김용옥은 90년 마흔 중반에 한의대 입학이 라는 그다운 방식으로 잠적했다.올 봄한의사 고시를 통과한 그는 한의학이 생물학→신학→철학으로 이어진 그의 인간의 근본을 보기 위한 계획된 공부 프로그램의 귀착지라고 했다.한의학의 저 광활한 전인미답의 문헌을 비평하고,서양의학처럼 임상학 체계를 세운다는 것이 그의 야심찬 목표다.
그의 이같은 과제는 때마침 서울대의대 천연물과학연구소(소장 張日武)가 추진중인 「신동의약(新東醫藥)개발 프로젝트」와 맞아떨어져 천연물과학연은 그를 객원교수로 초빙했다.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로 동양약물.천연물의 모든 약효성분을 구 명해 이를 물질특허화한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9월부터 서양의학도들을 상대로 동양의학 강좌도 여는 김용옥에대해 張소장은 『철학을 알고 한의학을 배웠으며 한문과 영문을 아는 金교수의 가세로,처방의 노하우를 체득한 「명의(名醫)」는많지만 그 처방의 과학적 거시.미시 근거에 대 한 분석은 사실상 부재한 한의학을 시스템화하고 세계화하는데 굉장한 변화가 올것』이라고 기대했다.
金교수는 80년대의 연극.영화 분야까지 건드린 「좌충우돌」에대해 『그것은 이 땅의 근저에서 살아숨쉬는 동양철학적 세계관을현대적 맥락에서 제시하고팠던 계몽운동이었다』고 말했다.때문에 『무엇을 세운다(立)기 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부수는(破)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의에 가까웠던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金교수는 자신의 새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약재표본실 또는 생약추출실에서의 촬영을 제의했다.그는 약재를 설명하고 실험기기를 어루만지며 진지하게 폼을 잡았다.
대학로에서 한문서당 도올서원도 운영하는 그는 할 일이 태산같아서 이젠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한의대 졸업을 「이리감옥」(원광대 한의대가 위치한 지금의 익산시)6년수형 후 출옥이라고 표현했다는데 한의학 공부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개업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6년간의 하숙생활은 정말 인고의 세월이었다.내 연구의 계획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기쁘게 참을 수 있었다.그 6년을 포함,31년에 걸친 대학공부 장기수의 출감과 같은 심정이다.
내가 의사 자격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한의 연구나 실험이 자격을 얻기 위한 것이다.의사 자격 없이는 내 논문이 국제적으로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칼 융의 심리적 가설도 임상경험을 통해 만든 것이다.
한의학은 거시이론이기 때문에 인체를 즉 환자를 직접 다루지 않으면 실험이 불가능하다.나는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세운 강력한 가설 체계처럼 인체의 작동체계에 대한 가설을 세울 작정이다.이런 맥락에서 서울동숭동에서 8월중 개업할 예정 이다.단 진료시간은 오전7시부터 11시까지만 할 계획이다.』 -명의라고 소문나서 환자가 밀려도 오전11시에 문을 닫는가.
『나는 의사노동자가 될 수 없다.물론 진료는 엄중하게 하지만그것은 또한 나의 연구의 일부분인 임상 데이터 수집 시간이기도하다.』 의사가 아니라 한의학자라는 뜻인데,그가 일할 천연물과학연구소는 연구전담교수 11명을 포함해 1백여명이 근무하는,서울대에서 가장 오래된(39년 설립) 연구소다.추진중인 신동의약프로젝트는 쉽게 말해 양약처럼 미생물에서 항생제를 뽑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전통 한약재 및 처방에 문헌적.화학적으로 접근,약효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여기서 신약제조법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서울대교수 취임은 10년만의 제도권 강단 진입이기도 한데 이 연구소와는 어떻게 연결됐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나.
『한마디로 서울대의 열린 마음이 나를 수용했다.닫힌 마음이라면 나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의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제는 인류사의 발전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위해 뭉쳐야 할 때다.나는 도사처럼 아무거나 지껄이는 놈이 아니다.이 연구소는 약리학적 연구와 더불어 한의학 문헌에 대한 근본적 분석을 해왔다.약리를 넘어서 한의학이 형성된 기초이론과 편견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나와 결합됐다.
앞으로 한의학의 언어를 구성하는 개념들을 지배하는 인식의 구조를 철저한 문헌 해석을 통해 구명해 나갈 것이다.』 「무슨 병에는 어떤 처방이다」는 경험적 한의가 아니라 그 처방에 반응하는 인체의 구조,우주론적 진화가 요약된 인체의 반응정보체계를밝혀보겠다는 말이다.
-할 일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자연경험과학이 순수한 과학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거기엔 인식론의 세계관이 있다.한의학에도 그 인식론이 기능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왜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있어도 모호한 표현으로 돼있다.동의보감은 중국의 한의학적 성과를 우리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실용적으로 종합한 것이라는 의미는 있어도 중국의학의 이론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이제마(李濟馬)의 체질론은 물론 독창적이다.
나는 과학적 탐색의 기초인 인식론적 세계관,우주론,과학사적 역사 안목등을 한의학 연구에 도입할 예정이다.』 -동양철학자가한의의 근원을 찾아나선다니 뭔가 신비주의와 같은 인상도 주고 있다. 『한의학 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신비주의다.내가 기(氣)철학,기철학하니까 내가 요즘 시중에유행하는 기의 도사인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란 과학화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이성에 호소해서 이해될수 있는 언어로 해석되어야 한다.진리를 형상화하자는 것이다.동양의학의 고유한 영역과 방법을 그 가치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서양의 과학적 성과와 대입할 수 있는가.이것이 문제인데 이는 양쪽을 마스터한 사람만이 가능하다.동양철학.한의학이 서양의학과 공시적.통시적으로 만나서 인체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것,참으로 거대한 과제 아닌가.』 -아까 계획된 프로그램이라고 했는데80년대 각종 강연.저술은 어떻게 되나.그것을 문화철학운동으로이해하고 있는 독자도 많다.
『동양적 전통이 과거에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미래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참으로 맹렬하게 이것저것 발언하고 썼다.사실 그것은 파(破)였지 입(立)이 아니었다.
나는 (이 땅에서 자생하고 형성된)동양의 인식론적 토대를 묻지 않고 개념의 아날로기만 가지고있는 철학은 문제가 있다고 절규했다.우리의 정신체계를 통해 세상을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그같은 계몽적인 작업은 끝났다.천연물연구소에서의 일,그리고 몇가지 큰 스케일의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없다.』 ***경직성 부수려고 욕설도 -金교수의 책을 보면 초기에는 서슴지 않고 비속어를 구사하다가 점차 점잖아져 간 것을느꼈다.개인적 시비에 얽혀 심경이 변화되었는가.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욕은 일상에서 쓸 때 타이밍이 있다.욕이 갖는 의미의 맥락이 있다는 말이다.그 맥락을 벗어나면 말 그대로 욕이다.80년대는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로 경직됐다.마르크시즘에 경 도된 학생들,정치권력의 폭압성,종교적 광신,과학의 인문학 배제등을 들 수있겠다.이런 경직성을 부수기 위해 방편적으로 욕이 나온 것이다. 이제는 배타적인 것들이 원리적 대화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야 할 때다.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의 언어도 변용,차원높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케일 크게 말씀하니까 스케일 큰 질문을 하자.金교수는 언젠가 한국 역사야말로 인류 역사 최대의 쓰레기통이라고 했다.물론 쓰레기통이 너저분한 의미는 아닌줄 알고 있다.21세기를 지배하는 한국 중심의 과학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무 엇인가.
『한국 문명처럼 잡다한 가능성이 공존하는 사회는 없다.다른 나라에서처럼 한국에서 기독교와 불교가 극단적으로 싸우는가.극단화되면서도 싸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체제 사상적분열을 통합해야하고,전통사상과 새 사상이 어울려야 하고 작게는한의학과 서양의학이 만나야 한다.극단 형태의 자본주의가 있고 그러면서도 가장 지독한 형태의 공산주의가 이북 에 있다.이런 것들이 불가불 통합돼가는 과정 속에서 한국 지성의 새로운 동태적 가치 정립이 나올 것이다.
이같은 여건은 한국이 가장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여건이 되기도 한다.나는 사실 대중동원가는 아니다.나는 학자다.학자는 뒤를 이을 인재를 길러낼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질문이 바라는 소기의 답변을 듣지 못한듯하다.그는 인재의 문제에대해 할 말이 많은듯했다.천연물과학연구소가 자신을 초빙한 것을계속 강조하는 것이 이를 웅변한다.그는 자신에 대한 이해할 수없는 시비가 정말 지긋지긋했다고 강조했다 .
***한국사상사 확립이 목표 -한의학 연구를 강조하다보니 본래의 분야인 동양고전 해석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필생의 사업으로 두가지를 정해 놨다.하나는 한의학의 약리.
침리를 통합한 새로운 한의학적 체계를 21세기의 생물학 연구와연결시켜 인류의 보편적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방대한 영역에 걸친 과학사.예술사를 다 포함하는한국사상사를 확립하는 것이다.이를위해 도올서원등을 통해 현재 많은 인재를 기르고 있다.그 인재들이 올바로 쓰일 수 있는 자리도 만들 것이다.나는 한문을 몸으로 느끼는 세 대고 또 현대학문을 동원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다.』 또 인재이야기다.한(恨)까지 느껴진다.왜 그런 시비에 말렸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지않기로 했다.
-도올서원은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유교는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따라서 골동품적 실체가 아니라 재해석돼야할 현존이라는 서원 취지문을 읽었다.
『가령 맹자는 본질주의자고 도덕주의자다.도덕주의에 대해 인식론적 회의는 가능하다.또 거기엔 규범윤리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반감을 사기도 한다.그러나 유교의 도덕교육에는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인성교육이 있다.그것이 한국의 도덕적 심 성의 기초가 된다.이런 자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를테면 종교전쟁이 안 일어난다.이것이 우리 문명이 가진 최대의 경쟁력이다.
그렇다고 명심보감을 가르치자는 식은 착각이다.인성의 원리를 가르치고 이해하고 따르도록하자는 것이 이 교육의 목표다.한문을아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별도로 치고.
도올서원에서는 4시간 강의를 하는 동안 학생들은 모두 무릎 꿇고 배운다.조선 서원의 엄격한 교육방식과 연속선상에서 고전의향기를 맡으며 사람됨이 무엇인가를 배우자는 것이다.』 그는 현존하는 한의사 권도원박사를 한의학의 스승으로 사사한다.침술의 대가인 권박사를 그는 한의에 원리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이제마보다 더 진보한 한의사로 보고있다.특히 그의 40년에 걸친 임상 데이터는 우리 한의의 보고라며 이를 정리중이라고 했다.
이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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