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파이 소설같은 간첩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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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랍계 필리핀 사람인줄만 알았던 단국대 「무하마드 깐수」교수가 실은 외국인으로 위장한 남파간첩이었다니 너무도 놀랍고 충격적이다.갖은 속임수와 위장이 다 동원되는 게 스파이세계라고는 하지만 국적세탁까지 해 같은 핏줄의 사람들 속에서 외국인 행세를 하는 경우는 스파이 소설 속에서도 발견하기 어렵다.새삼 북한 대남공작의 교묘함과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간첩사건은 북한이 우리 지식사회의 침투를 계속 노리고 있고,그 침투도 단기공작적인 것보다는 아예 지식사회의 중심부에 뿌리를 내리고 장기암약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즉 단순한 첩보수집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 리 지식사회에 영향을 주기까지 하려는 대담하고 다목적인 공작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사회는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며 개방적이다.지식사회가 이를 달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든간에 그러한 풍토는 간첩이기생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여건이 된다는 경각심은 가지는게 좋을 것이다.
무하마드 깐수로 행세한 정수일(鄭守一)은 학계는 물론 출판계.언론계와도 접촉하면서 그 활동영역을 확대해 왔다.뒤늦게나마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는 했으나 우리 사회의 방심과 안보망의 허점은 그를 무려 12년간이나 이 사회의 지성으로 대접하고 활보하게 했던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그는 이제까지 모두 1백61회나 간첩지령을 수신했고 네차례나 입북했다.그럼에도 지금에 와서야 겨우 그 정체를 밝혀낸데 대해서는 당국의 반성이 필요하다.그가 외국인인줄 알고 당국도 방심했는지 모른다.그러나 요즘처럼 갖 가지 이유로다양한 계층의 외국인이 입국하고 있는 형편에서는 북한이 외국인을 공작원으로 삼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이 점에 대한 경각심과 대책이 우선 당국에 필요하다.그렇지만 방첩은 관계기관만의책무가 아니라 온 국민의 일이다.북 한이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해서 대남공작이 약화된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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