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性폭력,누구의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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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날이면 날마다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성범죄와 성폭력의 홍수 속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당혹감을 넘어 「총체적 분노와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싶다.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길래 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지난 수십년간 우리에게는 그래도 정신적 목표가 있었다.동족상잔의 비극적 상처와 굶주림을 이기고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바로 잘살아 보겠다는 간절한 바람과 민주화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게 했고 곁눈질 없이 한길로 달리게 했다면,지금 이 타락상은 우리에게 이렇다할 정신적 목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또 「하면 된다」는 구호 아래 경쟁이나 하듯 달려온 삶의 방법이 우리의 인성을 이처럼 처절하 게 구겨놓고 말았다. 미래를 향해 기초를 쌓으며 한발한발 지속적인 노력보다는 그때그때 찰라적인 쾌락과 성취감으로,그리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잘못된 가치관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지탱했던미풍양속은 철저하게 단절.파괴되었다.
그리고 나날이 새롭게 발전되고 미친듯 달려가는 사회현상 속에서 「우리」가 아닌 「나」만을 생각하고 그늘진 곳의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웃에 대한 공동체적 삶을 철저하게 망각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임시방편적 대증요법으로 파렴치한 행위를 막으려 하기보다 그 원인이 모두에게 있음을 직시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종된 우리 본연의 인성을 바로 세우고 이 사회를 건강하게 살찌우려는 차원에서 심도있 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성폭력 사건의 책임은 정신질환자나 어느 누구만의 책임이 아니다.학교.가정.사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짜임새있는 계획으로 성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그러나 학교에서아무리 성교육을 잘 시킨다고 성범죄가 줄어들고 우리 사회에 건전하고 밝은 성문화가 토착될 수는 없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어른들이 먼저 도덕성 회복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가부장적이고 인간답지 못한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비뚤어진 성의식으로 생활해 가는 기성세대 모두에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사회 곳곳에 스며든 타락 분위기와 향락,과소비행태가 알게 모르게 종속적 관계를 이뤄 저항하기 힘든 성폭력 발생의 환경을 만든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용술 교육부 초.중등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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