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곰탕집 할머니'의 55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평생 곰탕집을 운영했던 할머니가 전 재산을 대학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근검절약으로 55억원 상당의 재산을 모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재산을 아낌없이 후세 교육을 위해 바치겠다는 성의가 더욱 세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상속을 둘러 싼 추악한 집안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태에 전 재산을 던지는 그 정신이 어둡고 답답한 요즘 세상을 한결 맑게 해주는 한줄기 소낙비처럼우렁차다.
한 사회를 떠받드는 힘은 역시 근검절약과 남을 위한 아낌없는희생정신에서 나온다.우리 사회가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으면서도 지탱되는 것은 이같은 의인(義人)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대전 김밥 할머니의 전 재산 대학 기탁,작은 인쇄소를 경영해 번돈 35억원을 대학에 기증했던 70대 노인,삯바느질 할머니의 10억원으로 세운 장학재단 이 모두가 의로운 사람이 살아있다는 이 사회의 증거다.
그러나 이들 의로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성이 소중하게 전달되고 길이 기약돼야 마땅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게 안타깝다.삯바느질 할머니의 장학재단은 관리소홀로 결국 사라져버렸다.
이사장인 아들의 생활비로 장학기금이 유용되고 증여 세를 피해 위장재단을 설립했다 해서 8억여원의 세금이 부과되면서 장학재단은 해체됐다.관리소홀로 의인의 성의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현행세법으로는 대학발전기금을 내기가 너무 까다롭고 기증자의 성의가악의(惡意)로 둔갑할 소지마저 있다 .사회가 더욱 튼튼해지려면몇 사람의 의인만으로는 안된다.대기업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세제(稅制)장치가 쉬워야 하고 이를 유도하는 유인장치가 필요하다. 곰탕 할머니의 의로운 실천이 이 사회 전체에 확산될 수 있도록 「나누는 기쁨,베푸는 삶」을 생활화하는 봉사활동이 제도적 장치로 움직여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