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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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가 갈까 해요.』 한동안 맥주를 들이켜더니 김사장은 느닷없이 말했다.
어떻게 새겨 들어야할지 몰라 을희는 그의 눈을 지켜보았다.
갈색의 눈이 날렵해 보였다.
『고향은 남쪽입니다만 선대부터 이북에서 살았습니다.중국하고의접경지대 산골이었지요.난리가 터져 내려오는 중에 한 여자를 만나 아들을 얻었는데 재차 밀려 부산까지 피신하는 바람에 뿔뿔이헤어졌습니다.나중에 알아보니 모자는 죽었다더군 요.』 김사장은맥주를 또 들이켰다.을희는 자신의 신세타령을 듣는 기분으로 가슴이 찡했다.
『결혼해 주십시오.맥을 열심히 키우겠습니다.잃어버린 제 아들놈을 도로 얻었다 생각하겠습니다.부탁입니다.』 그는 상을 밀어젖히고 다가와 을희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손을 빼려고 뒤로 물러앉는 을희를 넘어뜨리며 키스를 했다.얼굴을 옆으로 도리질하며 피하자 젖가슴을 누르며 잽싸게 치마 자락을 거뒀다.폭이 넓은 플레어 스커트는 홑이불처럼 을희의 얼굴을 덮었다.
그가 을희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전광석화(電光石火)였다.
그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저항해도 이미 소용이 없었거니와을희의 육신이 그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뜻밖이었다.
첫 남편하고의 얼림에서 을희는 별로 큰 쾌감을 느껴 본 일이없었다.사랑하는 남편과 살을 대어 껴안고 있다는 사실이 다만 흐뭇했을 뿐이었다.그러다 곧 임신했고,남편은 군에 입대하자마자전선으로 떠나더니 그 길로 어이없이 전사했다.
을희가 자신의 육욕(肉慾)을 깨달은 것은 맥을 낳고 반년쯤 지난 다음의 일이다.
부대 안엔 여성용 샤워실이 마련돼 있었다.
근무시간 후의 어느날 미군 여장교가 샤워하는 법을 가르쳐주며말했다.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올 때가 있으니 조심해요.아래를 덴 사람이 있었어요.』 더운물.찬물 조절은 생각보다 쉬웠으나 뱀처럼 길고 구불거니는 홈줄이 가누기 어려웠다.각도를 잘못잡아 쐬다 육신의 은밀한 곳에 소나기 물이 퍼부어졌다.
몸 저리듯한 충격으로 을희는 저도 몰래 앓음소리를 냈다.주저앉은 채 한동안 머리에 샤워를 쐬었으나 육신의 충동은 갈앉지 않았다. 다시 조심스레 물줄기를 은밀한 곳에 댔다.묘한 쾌감이온몸을 꿰뚫었다.
을희가 자신의 「비밀화원(비密花園)」에 눈뜬 것은 그때부터였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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