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민소송제 남용 안될 장치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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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예산낭비를 소송을 통해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소송제의 정부안이 확정돼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된다. 이와는 별도로 지역현안을 주민들이 결정하는 주민투표제는 7월 30일부터 실시된다. 단체장이 독단적인 행정운영과 비리를 저질렀을 때 퇴출시키는 주민소환제의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자치행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와 감시를 제도화하는 시스템이 속속 갖춰지는 것은 지방자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현재 지방자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체장을 당선시킨 정당이 지방의회를 독식한 곳이 많다. 그래서 단체장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기능이 약화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지방분권 로드맵에 따라 중앙의 권한을 획기적으로 지방에 넘길 계획이어서 단체장의 권한은 더 막강해질 것이다. 문제는 단체장이 선심성 사업에 주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비리를 저질러도 이를 시정할 행정적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감사원 징계의 대상에서도 단체장은 빠져 있어 부단체장이 대신 징계를 받는 실정이다. 유일한 제재 방법이 형사처벌인데 단체장들은 수감 중에도 옥중결재로 권한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이미 선진 각국이 시행 중인 주민에 의한 견제장치의 도입은 절실하다.

이런 좋은 의도와는 달리 주민소송제는 남용될 소지도 크다. 소송제를 이용해 반대당이나 정적이 단체장을 흔든다면 정상적인 업무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송 요건을 엄격하게 정해야 한다. 시행 초기에는 무리한 소송이 벌어지지 않도록 소송에 필요한 인원의 기준을 높이고, 소송대상도 재무.회계 행위로 제한하며 소송청구기간과 절차도 명시해야 한다.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주민감사청구가 선행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대로 1인소송까지 허용하며 소송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그 부작용은 불 보듯 뻔하다. 단체장에 대한 적절한 견제는 필요하지만 소신대로 일할 수 없을 정도로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