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고전학자들 ‘조선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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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번 주 신간 중에서 가장 눈에 띈 책들은 ‘조선’ 관련 책들이었습니다. 이 지면에 소개한 『고전산문산책』『양반의 사생활』 『조선의 르네상스 中人』이 그런 책들입니다.

조선 관련 책들이 꾸준히 쏟아져 나오고 있어, 또 ‘조선…’운운하는 이 책들은 자칫 식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을 만하고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되겠지만, 특히 고전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들의 열정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오랜 연구 덕분에 조선의 문장가들이, 그리고 양반과 중인 계층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있습니다.

『고전산문산책』을 쓴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과)는 소품문이 관심 받지 못하고 방치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해석해온 학자입니다. 서문에서 그는 조선 후기의 작품들 중에는 “지금 읽어도 흥미를 던지고 경탄을 자아내는 작품이 많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사장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섰습니다.

“고문이라는 이름에 기생해서가 아니라 어엿한 문장으로서 감상되고 평가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말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고전을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주고 일일이 설명까지 곁들여 준 그가 얼마나 고마운지요.

『양반의 사생활』에도 이 책을 쓴 하영휘 박사(가회고문서연구소)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고문서 전문학자인 그는 지난 17년(1989~2006)을 재단법인 아단문고에서 고문서를 조사, 발굴, 수집, 정리, 석문, 번역하는데 바쳤습니다. 이 책의 소재가 된 조병덕의 편지도 이 재단이 소장한 자료 더미에서 나왔습니다. 하박사는 책에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수많은 박스를 풀고 그 속에 있던 고서와 고문서를 정리하다가 유려하면서도 단정한 절제미가 있는 글씨의 편지 뭉치들을 발견했다”며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느꼈던 감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조선시대 개인의 편지가 이처럼 발굴된 예는 없다”며 “그의 편지는 일상사(日常史)의 보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각 낱말의 빈도까지 세어볼 정도로 자료를 꼼꼼히 읽고 정리했습니다.

이런 손길이 없었다면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조선 사회를 재구성하기란 매우 난망했을 것입니다.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을 쓴 허경진 교수(연세대 국문과)는 한시의 매력에 빠져 지낸 학자입니다. 그의 학문은 서재에만 갇혀 박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시를 대중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의 한시’ 시리즈를 기획, 1986년부터 지금까지 최치현과 황현의 시집 등 40여 권을 출간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열정’이 주는 감동의 힘은 생각보다 참 큽니다. 조선의 문장가들, 양반과 중인을 만나면서 이들을 되살려낸 학자들의 열정도 함께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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