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무대 오르는 퇴계·서애 종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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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퇴계 이황(1501∼1570) 선생과 그 제자인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종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패션 모델로 나선다.

안동시가 6일 오후 7시 서울 운현궁 특설무대에서 여는 ‘안동 전통한복 패션쇼’에서다. 지방자치단체가 서울에서 처음 여는 이번 패션쇼에선 지역 특산물인 안동포와 한지, 천연 염색 옷감 등으로 만든 의상 180여 벌을 선보인다.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종가의 종손인 이들은 ‘종손과 종부의 서울 나들이’라는 코너에 출연한다.

퇴계 종택에선 올해 100세를 맞은 15대 종손 이동은 옹 대신 17대 주손(胄孫·맏손자)인 치억(34·사진右)씨 내외가 모델로 등장한다. 치억씨는 지난해 4월 이주현(32)씨와 결혼하면서 서울 생활을 청산했다. 대신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종택으로 내려와 부부가 함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종가법도를 익혀왔다.

아내 주현씨는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치억씨 부부는 18대 주손인 아들 이석(2)을 얻었다. 치억씨는 “패션쇼 참가는 잠깐의 일탈”이라며 “요즘은 논문 준비에만 매달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치억씨는 한글도 깨치기 전인 다섯살 때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 사춘기엔 고민이 많았다. 퇴계 주손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공부하기 싫어 도망하러 다니기도 했다. 전통 의례에 반항심도 생겼다. 그는 안동서 고교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은 일본으로 유학했다.

도쿄 메지로(目白)대학에서 지역문화학을 공부했다. 귀국해 서울에서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성균관대 박사과정(유교철학 전공)을 마치고 지금은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치억씨는 “다시 유교철학으로 돌아온 것은 유교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근본을 확실히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3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종가의 제사’라는 심포지엄에서 종손의 이런 고뇌를 밝히기도 했다.

하회마을의 서애 종택에선 3대가 함께 패션쇼 무대에 선다. 14대 종손인 류영하(82·左)옹과 아들 창해(53)씨, 손자 승환(23)씨다. 류영하 옹은 서울에서 중앙고보와 성균관대 대학원을 마치고 동덕여고에서 생물 교사를 지냈다. 1971년 13대 종손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서울을 떠나 종택인 충효당으로 내려왔다. 창해씨는 대구의 한 기업에서 중역으로 있고 승환씨는 경북대에 재학 중이다.

류 옹은 “이런 행사가 처음이지만 안동을 알리는 일이라 사양할 수 없었다”며 “바지 저고리와 두루마기, 도포에 갓을 쓰고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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