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영국 성장과 투자확대 발등의 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홈팀의 최근 성적을 잘 알고 있는 영국의 축구팬과 전문가들은영국이 주최하는 9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영국팀이 66년 런던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을 제치고 일궈 낸 승전보의 재현을 원 하고 있다.
이를 간절히 기원하기는 정부각료들도 마찬가지다.영국팀의 한 달 동안의 멋진 경기가 4년 간의 경기회복 실패를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기적적인 승리에 들뜬 영국소비자들은 비로소 경제가 괜찮다는 느낌을 가질 테고 이는 부 수적으로 보수당 지지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영국의 축구와 경제라는 두 분야의 기록비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66년의 월드컵 제패 이래 경제와 축구는 크게 변화했고 오늘날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30년 전 월드컵 결승을 보기 위해 웸블리구장에 온 서독인들은 독일돈 11마르크로 영국돈 1파운드를 바꿨다.오늘날에는 1파운드가 약 2.3마르크에 불과하다.축구에 비유한다면 영국경제는 국제대회에서 하위로 밀린 꼴이다.66년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선진 25개국 중 12위였으나 오늘날에는 18위다.5위였던 GDP는 지금 6위다.
이번 달 재무부에서 유출된 내부문서는 영국의 순위가 앞으로 몇 년 안에 더욱 극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이 문서는 대략 20년 안에 중국과 인도.브라질 등이 G7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영국은 프랑스.이탈리아와 함께 2 부리그로 추락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추정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영국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호랑이」들을 계속 앞서려면 그야말로 기적적인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그러나 경제의 성공을 항상 상대적인 용어로 평가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영국의 잘못이다.경제는 미끄럼 질쳐 온 지난 여러 해보다 나아질 수 있다.문제는 이를 위한 기술과 팀워크를 갖고 있느냐다.
66년 이후 세계경제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글로벌 경제」가 도래했다.그 과정에서 영국선수들은 거친 땅에서 실전훈련을하지 않고 몸풀기 시합을 갖는답시고 캐세이 퍼시픽을 타고 동아시아를 쏘다녔다.
세계경제가 국제화되면서 자본과 노동력의 유동성은 훨씬 증대됐다.영국의 팬들이 불평하듯 영국리그에서 뛰고 있는 최고의 선수는 외국인이다.마찬가지로 영국에 투자하고 영국시장에서 많은 이윤을 챙기는 기업도 외국인 소유다.
영국경제가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토대는 부분적으로만 갖춰져 있다.현재의 인플레이션은 66년보다 0.5%포인트 정도낮고 성장률은 66년에 비해 다소 높다.그러나 실업은 최근 몇년 간 꾸준히 줄어 왔음에도 여전히 66년의 거의 10배에 이른다. 과거 수십년 간의 실패의 유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장뿐만 아니라 투자의 대폭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그때까지 유권자들은 영국팀이 승리를 거둔다 해도 경제에서도 비슷한 영광이 재현되리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게 좋다.
〈정리=김원배 기 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