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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를 시민에게 돌려주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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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긴 난지도의 역사에서 '쓰레기 수난사'는 아주 잠깐 뿐이다. 본래는 야생의 정취가 그윽한 섬(한강 북변 삼각주)이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온갖 들꽃에, 겨울엔 철새떼에 덮였다.

신촌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 나는 방과후 가끔 친구들과 샛강으로 헤엄치러 갔다. 수색으로 가는 기차를 훔쳐 타고, 벌판을 한참 걸어갔다. 신촌을 얼마큼만 벗어나도 전원이 펼쳐지던 때다. 그때 알몸으로 물장난하던 그 샛강 건너편 초원이 난지도였다. 물가엔 밑창 꺼진 조각배가 쓸쓸히 버려져 있고, 조그만 동물뼈가 백사장에서 풍화되고 있던 기억이 난다. 독특한 운치를 찾아 연인들도 꽤 다녔고, 무슨 영화 촬영도 했다.

그 섬은 쓰레기 트럭 행렬이 15년(78~92년)간 드나들면서 사라졌다. 서울 쓰레기가 모조리 쌓이고 쌓여 거대한 산이 됐다. 서울 사람들의 난지도 연가(戀歌)도 그 속에 묻혔다. 산머리는 해발 100m의 고원이다. 쓰레기 매립이 끝난 뒤 다시 자생한 수풀이 무성하다.

서울시가 그곳을 생태공원으로 가꿔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초 주산(主山) 고원에 '노을 공원'이 생겼다. 옛 난지도에서 느끼던 황량함의 정감이 그곳에 되살아났다. 실로 잃은 지 몇십년 만인가.

하지만 공원은 내내 닫혀 있다. 안내표지판만 2년째 걸려 있을 뿐. 다시 봄이 왔지만 통제 구역이다. 공원의 주력 시설인 대중골프장 문제 때문이다. 땅주인인 서울시와 골프장을 만든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법정싸움 중이다. 돈 문제, 불신, 거기에 감정까지 뒤틀려 있다. 그래서 올해도 시민에게 돌아오긴 어려울 것 같다.

분쟁의 줄거리는 이렇다. 당초의 협약(2001년)은 '공단이 골프장을 만들어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고, 투자비를 건질 때(최대 20년)까지 운영.관리한다'는 거였다. 한데 골프장이 완성되면서 틀어졌다. 공사비가 예상보다 두 배 가까이(146억원) 들자 공단은 처음에 잠정 합의한 입장료(1만5000원)보다 많은 3만3000원을 주장했다. 서울시는 "공단이 돈벌이를 하려 한다"며 발끈했다. 입장료를 1만5000원에 못박고, 공단의 운영권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어 버렸다. 이 골프장의 체육시설업 등록도 거부했다. 그러자 공단은 '일단 1만5000원으로 하되 추후 재조정'으로 후퇴한 뒤 소송을 걸었다. 재판은 공단이 이겼고(지난해 11월), 조례는 무효가 됐다. 이번엔 서울시가 항소했다. 항소심도 진다면 대법원까지 갈 태세다. 그러면 내년 봄까지 개장은 요원해진다.

문제는 그 피해를 시민이 다 뒤집어쓰게 된다는 거다. 1년 넘게 놀고 있는 골프장 유지관리비로 공단은 매달 1억5000만원을 날리고 있다. 재판이 어찌 되든 그건 결국 시민 부담으로 돌아오고, 시간을 끌수록 액수는 커진다.

해답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먼저 공원(골프장) 문부터 열자. '1심 판결'과 '첫 협약'이 당연히 개장의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공단이 1만5000원씩 받고 골프장 운영을 시작해 더 이상의 손실을 틀어막고, 공원도 시민에게 돌려주는 거다. 그러다가 최종 재판에서 서울시가 이기면 조례에 따라 공단에 소급.후속 조치를 하면 된다. 반대로 공단이 이기면 정밀실사를 거쳐 서울시와 이용료를 재조정하면 될 일이다. 이렇든 저렇든 두 기관이 정산할 문제다. 시민에겐 다시 태어난 난지도 근처에도 못 가게 하면서 '시민을 위하여'라는 명분은 허황하다.

김석현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