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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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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본의 최고액권인 1만엔권 지폐의 얼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 국민의 교사'로 불린다.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기둥인 그가 1860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의 자손들은 어떻게 돼있나"고 물었다. "아마 딸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누군가의 아내가 돼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후쿠자와는 당시 '냉담한 대답은 충격이었다. 불가사의다. 워싱턴은 일본의 도쿠가와(德川)집안과 같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던 때다.

후쿠자와는 미국서 영어책을 잔뜩 사들고 와 독학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이 늘어나자 정식으로 '게이오(慶應)의숙(義塾)'이란 간판을 달았다. 일본 최초의 대학이다. 후쿠자와는 1861년 통역사로 1년간 유럽까지 순회했다. 그의 해외견문 보고서가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주춧돌이 된 '서양사정''문명론의 개략'이다. 후쿠자와의 선창에 따라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유럽으로 떠나 당시 유럽의 신예 강국인 프러시아를 배워 왔다. 일본의 국가틀은 독일형이다.

중국에서 해외유학의 열기가 본격화한 것은 일본보다 늦은 19세기 말이다. 1911년 쑨원(孫文)의 신해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으로 유학을 많이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유학생이 프랑스로 옮겨 갔다. 전쟁으로 일손이 모자라는 프랑스가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혁명의 본토인 프랑스로부터 직접 배우자'고 생각했다.

그 프랑스 유학대열의 선두에 선 인물이 덩샤오핑(鄧小平)이다. 鄧은 1920년 파리로 떠나 4년간 노동자로 일하고, 1년여 비밀 공산당 활동에 매진했다. 마지막 1년은 공산혁명의 성지(聖地)인 모스크바에서 유학했다. 그는 프랑스 커피와 치즈를 즐기며, 열렬한 축구광이자 브리지의 달인이다. 오늘의 중국을 만든 鄧의 실용주의 철학도 젊은 시절의 견문과 무관치 않다.

유럽에선 18세기 이래 귀족이나 지식인의 견문 넓히기 해외여행을 강조해 왔다. 오랜 기간에 걸쳐 멀리 여행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는 의미에서 '그랑 투르(Grand Tour.위대한 여행)'라고 한다. 괴테는 이탈리아, 헤세는 인도, 릴케는 러시아를 여행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개혁.개방으로 가는 그랑 투르이길 빈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