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블로그] 옆집은 '올림픽 스포일러'?… 김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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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광복절 다음 날인 16일 토요일 밤은 정말 황홀한 순간이었습니다. 한국 '여자역도의 꿈' 장미란 선수는 세계신기록을 5개나 갈아치웠고 곧이어 야구는 이대호가 동점투런 홈런을 터뜨리는 등 선전하며 숙적 일본에 5-3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기자는 이 순간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TV로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감격적인 순간을 기자는 2초 늦게 누렸습니다.

먼저 16일 밤 9시를 넘긴 시각.

인상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장미란은 용상 2차시기에서 183kg 세계신기록에 도전했죠. 장미란이 역기를 클린해 가슴 위에 올린 순간 기자의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까"

그 순간 '와-아'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습니다. 아파트 옆집에서 먼저 함성을 치른 것입니다. 곧이어 장미란이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이 TV에 나왔습니다. 용상 183kg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이죠. 2, 3분 지나 장미란은 186kg에 도전했죠. 장미란은 이번엔 조금 어렵게 클린해 역기를 가슴 위에 올렸습니다. 기자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와-아'

다시 옆집에서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기자는 눈치를 챘습니다.

"성공했구나"

TV화면에 장미란 선수가 186kg 역기를 번쩍 드는 모습이 뒤늦게 나왔습니다. 장미란이 연출한 감격을 한동안 즐긴 후 채널을 돌렸습니다. 같은 시각 야구대표팀이 일본과 일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죠.

6회말 일본에 투런홈런을 허용해 2-0으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7회초 한국의 반격. 김동주의 포볼로 무사 1루 찬스를 맞았습니다. 다음 타자는 6번 이대호. 이대호 선수는 미국과의 첫 경기에서 투런 홈런을 때렸죠.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감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다시 '와-아'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이대호의 힘찬 스윙에 이어 공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장면이 TV화면에 잡혔습니다. 기자는 물론 가족 모두 또 '물'을 먹은 것이죠.

TV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기자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TV에 있더군요. 바로 PIP(Picture in Picture, 다중 화면) 기능이죠. TV 화면을 두 개 동시에 보는 것입니다.

같은 방송 화면을 하나는 공중파 채널에, 또 하나는 케이블 채널에 맞추었습니다. 마침 배드민턴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중파 채널과 케이블 채널에 보이는 화면은 시간 차이가 났습니다. 공중파 채널이 조금 빨랐습니다.

그렇다면 "케이블 채널이 얼마나 늦을까"

궁금증이 또 다른 궁금증을 부른 것이죠.마침 어느 채널에서 남자 100m 결승 경기 모습을 녹화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TV화면에 고정시켰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자메이카의 볼트가 질주하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중계되고 있습니다. 잠시후 왼쪽 공중파 채널은 볼트가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 순간 오른
쪽 케이블 채널은 볼트가 아직 달리고 있었습니다.

디카 셔터를 누른 후 얼른 메모리카드를 꺼내 PC에 다운받아 시간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왼쪽 공중파 채널에 나온 100m 기록은 9.6초(실제 기록은 9초69), 오른쪽케이블 채널에 나온 시간은 7.7초. 케이블 채널이 1.9초 늦은 장면을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죠.

베이징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면서 이런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죠. 특히 낮에 회사 사무실에서 양궁 경기를 시청할 때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납니다.

내가 보는 TV화면에는 화살이 아직 활시위를 떠나지도 않았는데 사무실 저쪽에서 먼저 함성이 터져나옵니다. 곧이어 내가 지켜보는 TV화면에 '10점' 골드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모든 게 케이블 채널이 공중파 채널보다 2초 가량 늦게 중계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채널, 위성방송은 얼마나 늦어지는 지도 궁금해지네요.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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