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체중 불리기 고통 金과 바꾼 '소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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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역도 최중량급(+75kg급)에 출전한 장미란이 16일 용상 3차 시기에서 186kg을 들어 합계 326kg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장미란(25)이 처음 바벨을 잡을 때는 사춘기였다. 역도선수 출신인 아버지 장호철씨가 딸의 운동 능력을 눈여겨보고 역도의 길로 인도했다. 장미란이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장씨는 딸의 손목을 잡고 역도부에 데려갔다. 체구가 듬직하면서도 몸이 날렵해서 멀리뛰기나 달리기를 하면 1등을 독차지한 장미란이었다. 장씨는 딸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장미란은 “힘만 쓰는 역도는 무식해 보여서 싫다”며 그 자리에서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장미란은 어머니 이현자씨 앞에서도 “싫다. 왜 여자더러 역도를 하라고 하느냐”며
서럽게 울기도 했다. 장미란의 눈물은 이씨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하지만 맏딸인 장미란은 맏이로서의 책임감이 강했다. 1996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장미란은 결국 역도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후 한번도 옆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처음 출전한 강원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장호철씨의 눈은 정확했고 딸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했다.

역도를 시작한 후 장미란이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낸 것은 딱 한번. 아버지가 동생 미령이에게도 역도를 시키려고 할 때였다. 장미란은 “동생까지 역도를 하게 하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역도 선수의 길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동생이 바벨을 잡는 것은 막고 싶었다. 하지만 역도인의 피가 흐르는 장씨 집안에서 미령도 역도 선수의 길을 외면하진 못했다.

이씨는 “미란이가 ‘역도는 가장 정직하고 바른 종목’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역도는 상대방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상대의 실수를 바라거나 속이려는 경기가 아니다. 바벨과의 일대일 승부다. 땀흘려 노력한 만큼 바벨 무게는 는다. 장미란은 훈련을 거른 일이 없고,역도를 시작한 뒤 꾸준히 기록을 늘려 왔다. 특별한 슬럼프도 부상도 없었다. 정직한 땀을 흘린 결과다.

장미란은 재능을 펼치기 위해, 역도를 시작한 뒤 어떤 여자도 원하지 않는 체중 불리기를 시작했다. 한창 외모 치장에 관심을 가질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장미란은 재능을 펼치
기 위해 외모에 대한 관심을 운동에 대한 열정으로 돌렸다.

역도에서 체중과 기록은 비례한다. 근력을 키우면서 몸무게를 늘리면 더 무거운 무게의 바벨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체중 제한이 있는 체급의 선수들은 정해진 체중 한도 내에서 최대의 근력을 만드는 것이다. 장미란은 역도 최중량급(무제한급)선수라는 숙명 때문에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늘‘살찌우기’에 고민해야 한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체중 113㎏이었던 그녀는 라이벌 무솽솽에게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무솽솽보다 20㎏ 정도 가벼운 장미란이 120㎏까지 몸무게를 늘린다면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게 역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미란은 의식적으로 많이 그리고 자주 먹는다. 끼니때마다 보통 사람들의 1.5배의 밥을 먹고 틈틈이 간식, 야식까지 챙긴다.

일반인은 억지로 먹어야 하는 고통을 잘 모른다. 장미란은 “먹는 것이 정말 싫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장미란에게 먹는 일은 또 하나의‘훈련’이다. 장미란은 지난해 대표선발전을 마치고 “(무솽솽과의 대결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살을 찌우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 운동하는 사람이 체중을 불리는 건 빼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장미란은 아시안게임 이후 베이징올림픽을 위해 체중을 118㎏까지 늘렸다. 경기장에서 입을 꾹 다문 채 바벨앞에 서는 장미란은 무뚝뚝해 보인다. 하지만 무대를 내려온 그녀는 미소천사다.

장미란의 손은 마디마디 온통 굳은살이다. 바벨을 들면 자주 물집이 잡힌다. 물집 잡힌 손으로 계속 바벨을 드니까 결국 물집이 터지면서 피부가 밀린다. 그 위에 또 굳은살이 박이면서 또래의 손과는 천지차이가 됐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장미란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장미란의 우승 세리머니는 보는 이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그녀는 세상 그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길을 흔들리지 않고 수도자처럼 묵묵히 걸어왔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그녀의 담담한 미소는 외모지상주의에 물든 우리를 향해 말하는 것 같다. 한결같은 마음과 진실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겠느냐고.

장미란은 평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산속에 들어가 살을 빼고 오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예상은 이런 거다. 장미란은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바닥을 매만지며 다시 바벨을 들어 올릴 것이다. 내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4연패를 목표로.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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