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점 한 발에 온 국민이 “아~” … 1mm 빗나간 ‘금빛 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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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모右가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한 점 차로 우크라이나 빅토르 루반에게 패한 뒤 사대를 걸어나오고 있다. 장영술 감독도 결과가 아쉬운 듯 탄식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과녁의 경계선상에 걸린 화살 한 발에 한국 남자 양궁이 또 한번 탄식했다. 박경모(33·인천계양구청)는 15일 베이징 올림픽 그린양궁장에서 열린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빅토르 루반(우크라이나)에게 112-113 한 점 차이로 졌다.

4엔드 두 번째 화살이 ‘신의 장난’이었다. 10발까지의 점수는 95-94로 박경모가 한 점 앞선 상태. 11발째 루반은 9점을 쏘았고 박경모가 쏜 화살은 8점과 9점 과녁 경계선에 걸쳐졌다. 기록판에는 8점이 떴고, 그 옆에 엔드를 마친 뒤 최종 점수를 다시 확인한다는 별표(*)가 붙었다. 103-103 동점이 됐다.

박경모가 12발째 마지막 화살을 9점을 쏴 점수는 112-113으로 한 점 뒤졌다. 경계선의 화살 점수를 몇 점으로 판독하느냐에 따라 연장 슛오프에 들어가느냐 경기가 끝나느냐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판정단은 8점을 선언했다. 챔피언은 루반이 됐다. 장영술 남자 대표팀 감독은 “망원경으로 확인했을 때는 9점을 줘도 된다고 판단했다. 경계선에서 1㎜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벗어난 모양”이라고 말했다.

박경모는 결승 3발째부터 7발째까지 연속 다섯 발 10점을 쏘고도 단 한 발의 얄궂은 실수 탓에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로써 한국 남자 양궁은 1984년 LA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후 24년 동안 개인전 금메달을 한 차례도 가져오지 못했다.

◇올림픽 라운드 방식은 ‘러시안 룰렛’=양궁은 72년 뮌헨 올림픽에서 5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경기 방식이 몇 차례 바뀌었다. 초기에는 144발로 승부를 가렸지만 갈수록 화살 수가 줄어들었고, 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는 두 명씩 겨뤄 한 명이 탈락하는 올림픽 라운드 방식이 도입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은 64강전부터 12발씩 쏴서 탈락자를 가린다.

보는 재미는 늘어났다. 두 명의 궁사가 벌이는 대결이 긴장감을 더해 준다. 더불어 12발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이변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예선에서 올림픽 신기록(117점)을 세웠던 이창환(26·두산중공업)은 16강전에서 청추셴(말레이시아)과 연장 접전을 벌인 끝에 탈락했고, 세계 랭킹 1위 임동현(22·한국체대)은 16강전에서 빅터 원덜리(미국·랭킹 41위)에게 덜미를 잡혔다. 올림픽 라운드 방식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선수들끼리는 기량 차이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올림픽 라운드 방식이 한국 선수들에게는 ‘러시안 룰렛’으로 불리는 이유다.

◇극도의 부담감 이겨내야 최강=한국 양궁대표팀은 이 같은 방식에서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국을 추격하는 쪽이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경기를 한다. 장영술 감독은 “그동안 노력한 것에 비하면 결과가 그에 못 미쳐 아쉽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 같은 부담과 긴장까지 모두 이겨내야만 진정한 세계 최강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대표팀 또한 알고 있다. 장 감독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남녀 단체전을 휩쓸며 기분 좋게 출발하고도 개인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놓쳤다. 선수가 서로 의지하는 단체전에 비해 혼자서 싸워야 하는 개인전에서 심리적으로 약점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이은경 기자


“금메달에 점 찍다 말았다
우승 못하고 은퇴 아쉬워”

박경모는 경기를 마친 뒤 “아버지 영전에 개인전 금메달을 가져가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경모의 아버지 박하용씨는 6월 10일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한 점 차로 금메달을 놓쳤는데.

“하늘이 금메달에 점을 찍다가 말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마지막에 실수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바라셨던 게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이었는데….”

-4엔드에서 8점을 쐈는데.

“마지막에 부담감을 떨치지 못한 게 패인이다 .”

-앞으로 계획은.

“이제 물러나야 하지 않겠나.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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