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문학 12.'현대문학'의 문인들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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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현대문학』은 우리에게 푸른 숲의 구실을 했다.우리 또래는 철들면서 곧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 부닥쳤다.
마침내 그것이 6.25라는 전란을 몰고 왔다.
대학 강의실에서도 전선의 포성이 자주 들렸다.
그 무렵 재학생들에게는 병역이 보류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친구는 통금시간까지 술을 마신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는 신분증과 지갑을 하숙방에 두고 목로주점을 찾아들었다가 무전취식의 병역미필자로 점찍혀 입영조치됐다.
그후 그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나날의 생활이 곧 작두날을 탄 꼴이었다.
그런 살벌한 시대에 우리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이 두가지있었다. 그 하나는 학교를 매개체로 알게된 동서고전들이었고 그것을 먼저 읽고 우리에게 알려준 스승과 선배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현대문학』(이하 『현문』) 창간호였다.
처음 이 잡지를 들고 우리는 약간의 실망감을 가졌다.
흔히 새 출발하는 문예지가 표방하는 선명한 기치나 높은 목소리를 담은 행동강령이 거기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많은 시인.작가의 좋은 작품들을 싣고 있는 것이 『현문』이었다.
그런데 호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현문』의 그런 문학제일.범문단주의가 차츰 마음에 들었다.그 무렵 우리를 괴롭힌 것은 어디에나 있는 접근금지의 경고판이었고 검문검색이었다.
그 정치철학형태인 이데올로기 표방에는 신물이 나 있었다.그런서슬속이어서 『현문』의 개방주의,그 문학판인 범문단주의가 그래서 좋았던 것같다.
이제 『현문』은 곧 5백호를 맞게된다고 한다.
강산이 다섯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이 잡지는 참으로 든든하게 한국문단의 공기 구실을 해주었다.
그동안 다수의 유능한 시인.작가를 배출해 주었고 문학.문화의기둥적인 견인차가 되어왔다.
앞으로도 그런 자세와 보폭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때로는 풍화로 작용할 수 있는 세월을 헤치면서 끝없이 젊은 문예지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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