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망주는 大法.憲裁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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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법원과 헌재(憲裁)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헌재가 구 소득세법 일부 규정이 위헌이라며 한정위헌결정을 내린데 대해 대법원이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대립이 표면화된 것이다. 사실 대법원과 헌재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헌재출범과 동시에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기본적으로 두 기관 모두 사법판단이 기본업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도 업무한계를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아 법해석에 따라 서로의 업무영역이 침범.중복 될 수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두 기관은 이번의 상충(相衝)된 결정.판결사태에 대해모두 법해석이나 법이론 구성과정에 흔히 있는 이견(異見)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이해관계(利害關係)의 상충에서 비롯된 껄끄러움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정대립,나아가 자존심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법원의 재판내용을 헌법소원대상에서 제외시킨 헌법재판소법의 위헌여부를 다투는 헌법소원사건에 대한 헌재심리가 한창 진행중인 시점에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헌재를 최 고기관으로하는 사실상의 4심제가 된다고 보는 법원측이 미리 이를 막기 위해 선제공격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나 헌재는 권위와 양심의 최고 상징기관이다.두 기관의판단은 바로 우리 나라의 최종적인 가치기준이 된다.그런 기관들이 엇갈린 법해석을 내려놓으면 법을 집행해야 할 기관이나 국민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이러한 사태는 대법원과헌재를 막론하고 사법부 전체의 권위를 손상시키고,국민들의 신뢰감을 실추시킨다는 점에서 특히 삼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대법원과 헌재는 서로 그 기능을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아울러 이번 기회에 법개정 등을 통해 대법원과 헌재의 위상과 업무영역을 분명하게 매듭짓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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