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자금성에 고구려 혼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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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역사적으로도 뜻 깊은 날이잖아요. 그런데 국내에서 공연 안 하고 기왕 중국 가는 거, 자금성 아니면 안 된다고 끝까지 버텼죠.” 안무가 국수호(60·디딤무용단장)씨가 또 사고(?)를 쳤다. 건국 60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 중국 베이징 심장부에서 공연을 올린다. 작품명은 ‘천무(天舞·사진)’. 공연장은 자금성 내 중산극장(1400석)이다.

과거엔 중국 황제의 연회장으로, 최근엔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 ‘빅3 테너’가 무대에 올랐던 곳이다. 베이징 올림픽 문화 행사의 하나로 ‘천무’가 초청됐다. 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공식 초청받은 유일한 한국 공연이자, 자금성 내 문화 행사론 유일한 외국 공연이기도 하다.

“중국 수교 1주년 기념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변형시킨 공연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중국과는 꾸준히 교류해 왔고, 그 인연이 베이징 올림픽과도 연결된 거죠.”

웅장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국 단장의 스타일은 이번에도 변함없다.

‘천무’라는 제목처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춤으로 형성화했다. 하늘과 땅, 인간이라는 삼재사상도 담겨 있으며 화합과 인류애라는 올림픽 정신도 녹여낼 예정이다.

특히 작품 속 ‘비천무(飛天舞)’ ‘기악천무(伎樂天舞)’ ‘요령고무(天神鈴鼓)’ ‘조의선인의 춤(早衣仙人舞)’ 등은 고구려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중국 본토를 호령했던 고구려인의 기상이 15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작품으로 승화돼 자금성에 울려 퍼지게 된 셈이다.

국 단장은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위해 10여 년간 중국 현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고구려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의상·소품 등도 모두 사료에 근거해 만들었다. 공연 시간은 총 100분. 35명의 출연진이 숨가쁘게 무대를 휘젓게 된다.

국 단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북이다. 그가 1980년대 중반에 만든 ‘북의 대합주’는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최고의 명공연으로 손꼽힌다. 그는 이번에도 공연의 50% 이상을 북춤으로 채웠다.

“북 자체가 맥박 소리와 가깝습니다.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호흡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원초성이 있는 것이죠.”

올해로 춤 인생 45년째를 맞는 국 단장은 지금껏 무려 130여 개국에서 공연했다. “세계의 예술적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폭넓게 수혈해 왔죠. 제 작품의 자양분입니다. 이를 어떻게 한국적 정서와 맞물리느냐가 승부처인 셈이죠.”

그는 ‘민족적 가래질’이란 말을 강조했다. “최근 외국 스태프와 협력해 만든 뮤지컬·비보이 공연 등은 세계화에만 관심을 둘 뿐 문학성은 철저히 거세돼 있습니다. 그런 것은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죠.” 모티브는 한국적인 것에서 따오되 발레·현대무용 등을 수용해 글로벌한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의 요즘 행보는 분주하다. 이달 중순엔 사도세자를 테마로 한 ‘사도’를 스페인에서 공연했고, 베이징 올림픽 축하 공연이 끝나는 22일부턴 똑같은 공연을 서울에서도 올릴 예정이다. 또한 90년대 중반에 만들어져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춤극 ‘명성황후’를 부활시켜 한국 국립극장·중국 국가대극원·일본 신국립극장 등 아시아 3국의 대표 공연장을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북한은 ‘꽃 파는 처녀’를 중국 국가대극원에서 5일간 공연했고, 중국 전역에서 50일간 공연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에 못지 않은 작품으로 아시아인의 감성을 파고 들어야죠. 한국의 민족적 소재도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신화에 못지않는 콘텐트라고 믿고 있습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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