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대출’ 문자 왜 자꾸 오나 했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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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인 해커가 한국인들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900만 건을 빼돌려 국내 대부업체에 판 것으로 드러났다. 국경을 넘어 유출된 개인정보는 대부분 대부업체의 자금 대출 광고에 쓰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7일 중국 해커가 인터넷 포털 등의 사이트에서 빼낸 가입자 개인정보를 사들여 대부업 광고에 이용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대부중개업자 천모(42)씨 등 2명을 수배했다. 이들은 경찰 수사를 피해 중국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또 천씨에게서 불법적으로 산 개인정보를 이용해 대부업체를 운영한 혐의(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신모(42)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천씨 등은 2006년 5월 초 중국에서 현지 해커를 만났다. 그는 중국 해커로부터 한국인의 개인정보 900만6780건이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넘겨받고 1500만원을 줬다. 천씨가 입수한 고객정보에는 이름, 아이디, e-메일 주소,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집주소 등이 들어 있었다.

천씨는 이 개인정보로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우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들어 있는 ‘상급 정보’는 다른 대부중개업체에 되팔았다. 건당 2만원을 받아 모두 2억2000만원을 챙겼다. 그리고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신속대출, 싼 이자’ 등의 스팸문자를 보냈다. 제3금융권의 대출을 알선한 것이다. 이 방식으로 25억여원의 중개수수료 및 수당을 챙겼다. 투자한 원금 1500만원을 회수하고도 27억여원이 남는 장사를 했다.

경찰 수사 결과 중국 해커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서 관리자 권한을 얻을 수 있는 특정 명령어를 함께 입력했다. 이런 수법으로 사이트에 침투하면서 관리자 권한도 얻어냈다. 관리자 권한을 얻어야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름이나 주소 등의 단순 개인정보 유출 등을 포함하면 중국 해커가 유출한 개인정보는 1000만 건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으로 넘어간 국내 개인정보 규모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 관계자는 또 “해커 1명이 900만 건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중국에서 한국인 개인정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조직이 있어 유출된 개인정보는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업체의 진술과 유출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정보수집 기간 등으로 볼 때 국내 인터넷 보안설비가 취약했던 2005년과 2006년에 해킹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중국 해커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으로 달아난 천씨를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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