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권력 ‘파워게임’검찰 손에 넘어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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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17면

정치의 사법화.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치 이슈들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같은 사법기관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이른다. 노무현 정부 시절 헌재로 넘어갔던 대통령 탄핵 사건과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승부가 명쾌하게 가려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관들이 사실상의 정치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긴 쪽은 ‘당연한 결론’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진 쪽에서는 승복하지 못한 채 반발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의 뇌관으로 떠오른 BBK 사건을 처리해야 했던 검찰이 다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 반출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과 행정관 등 10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은 노 전 대통령 본인까지 고발하고 나섰다. 청와대와 봉하마을의 갈등이 법적인 쟁점으로 비화된 것이다.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 세력화를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반출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봉하마을에선 이번 고발의 목적이 노 전 대통령을 흠집 내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간의 정치게임에 끼어들게 된 검찰은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모습이다.

당장 이번 주 초에 사건을 어느 부서에 배당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 기밀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는 공안부이지만, 철저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수부에 맡겨야 한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형사부나 첨단범죄수사부가 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반환하지 않은 기록물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봉하마을 압수수색과 노 전 대통령 조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벌일지도 고민이다. 노 전 대통령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나올지까지 감안해야 하는 ‘고차 함수’ 문제다. 어느 변호사는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느는 것은 정치적 사건을 다루면서 정치감각이 계발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비를 대화로 풀지 못하는 정치력 부재를 지켜보는 국민은 답답하다. 이러다가는 “정치 사건을 둘러싼 고소·고발에 대해선 몇 달 정도 수사하지 않고 냉각 기간을 갖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 보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혼을 신청한 부부에게 3개월간 다시 생각할 숙려 기간을 두듯이 말이다.


 
▶이번주
●29일 서울중앙지검, PD수첩 중간수사 결과 발표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30일~ 5일 세계철학대회(서울대) ●31일 숭례문 방화범 항소심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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