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버팀목’ 중산층 또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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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에 다니는 강모(44)씨는 얼마 전 3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새로 만들었다. 치솟는 생활비며 교육비 때문에 월급만으론 생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매달 450만원을 받지만 중학생 두 자녀 교육비(220만원)와 주택담보대출 이자(150만원)를 빼면 한 달 생활비는 80만원 정도. 강씨는 “지난해보다 대출 이자가 매달 50만원가량 불어난 데다 휘발유를 비롯한 각종 물가가 오른 탓에 하루하루가 힘겹다”고 말했다.

2년 전 대기업에서 나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유모(55)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린다. 부동산 거래가 뚝 끊기면서 수입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달 운영비로 150만원이 나가는 반면 올 들어 수입은 전세 계약 두 건으로 번 120만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유씨는 결국 중개업소를 정리할 생각이지만 7개월째 사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개업소를 인수할 때 냈던 권리금 5000만원이 아깝기만 하다. 

중산층이 또다시 무너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층 엷어진 중산층에 불황과 고물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주식과 펀드는 폭락해 자산 손실은 커지고 있고 금리가 줄곧 올라가면서 대출이자 부담은 늘고 있다.

◇위기의 중산층=고민을 한마디로 줄이면 실질소득 감소다. 벌이가 줄지 않았어도 물가가 너무 올라 실질 소득은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다. 6월에 5.5%(전년 동월비) 오른 소비자물가가 6%대로 뛰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다. 밀가루(88%)·세제(10%)·경유(51.3%) 등 생활필수품은 1년 새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올랐다. 봉급으로 생활하는 중산층은 그나마 낫다. 자영업 중산층 중에선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6월에만 10만1000명 감소했다. 소득이 줄면서 빚을 내 생활하는 중산층이 늘고 있지만 이자까지 올라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구당 빚은 3841만원이나 된다. 각종 대출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이달 들어 0.26포인트가 올라 연 5.63%가 됐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연 8%까지 뛰어올랐다. 반면 중산층이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부동산과 펀드 등 자산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값이 1년 새 4.2% 내린 것을 비롯해 집값 하락세는 서울 강북권과 수도권으로 번지고 있다. 주식형 펀드는 대부분이 원금을 까먹고 있다. 통계상으로 중산층은 이미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경준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중산층 비중은 1996년 68.5%에서 지난해 58%로 감소했다. 더구나 96년 중산층이었던 10가구 중 1가구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유 연구위원은 “자영업 종사자 몰락이 중산층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면서 “중산층 붕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중산층 복원대책 서둘러야=중산층은 상류층과 빈곤층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허리’ 역할을 한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사회는 양극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중산층이 흔들리면 정치적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경제 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세 등을 통해 부담을 덜어주고, 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산층 복원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소득세는 물론 참여정부 때 늘어난 각종 준조세 부담을 낮추고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그나마 감세가 중산층의 숨통을 틔울 것”이라며 “경제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길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렬·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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