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도살자 카라지치 술집 들락거리고 연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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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무려 25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평소 어떻게 살았을까. 불안에 떨고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지냈을까. 아니다. 자신의 사진이 걸린 동네 바를 찾아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애인과 밀회도 즐겼다. AP통신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4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63)의 체포 전 사생활을 이렇게 전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외곽에 있는 카라지치의 아파트 인근에는 ‘매드 하우스’라는 바가 있다. 주인 미스코 코비야니치는 “카라지치가 자신의 가게 단골이었으며 레드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말했다. 이곳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벽에 카라지치와 또 다른 전범 라트코 믈라디치(66)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코비야니치는 카라지치가 처음 자신의 바를 찾았던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1년 전쯤 동네 사람 몇몇이 둘러앉아 굴사(세르비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수염이 무성한 남자가 찾아왔다. 안으로 불러 들이자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곁에 앉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카라지치는 그날 밤새 머물렀으며 그 후 정기적으로 들렀다고 바 주인은 말했다.

가족과 애인에 대한 얘기도 흘러나왔다. 카라지치가 자신의 대체의학 웹사이트 구축을 위해 고용했던 졸란 파블로비치는 “카라지치의 아파트에서 미국 프로농구팀 LA 레이커스의 노란색 셔츠를 입은 4명의 남자아이 사진을 봤다”고 말했다. 그가 카라지치에게 누구냐고 묻자 “미국에 살고 있는 내 손자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AP통신과 텔레그래프는 이 가족 사진을 가짜로 추정했다. 파블로비치는 또 대체의학 의사 행세를 한 카라지치와 함께 일을 한 애인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은 머리의 50대 여성으로 카라지치는 그를 “밀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21일 체포된 카라지치는 다음 주 중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로 넘겨질 예정이다. 변호사인 스베타 부야치치는 그가 법정에서 “직접 변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카라지치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과 보이슬라브 세셀리 세르비아 급진당 총재의 전례를 좇아 ‘시간 끌기’ 전략을 쓰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ICTY에 기소됐던 밀로셰비치는 스스로 변호하며 4년간 재판을 끈 끝에 채 판결이 내려지기 전인 2006년 3월 심장마비로 옥중 사망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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